*대구수목원에 사람을 사로잡을 만큼 짙고 신선한 찔레나무(영실)꽃의 향기가 진동 합니다.
1.찔레나무 꽃:
흰색 또는 연분홍색의 꽃은 5월경 가지 끝에 원추(圓錐)꽃차례를 이루며 무리져 피는데, 꽃자루에는 잔털이 있다. 꽃받침잎·꽃잎은 모두 5장이며, 수술은 많다.
열매는 9월경 붉은색으로 둥그렇게 익는다.
한국에서는 산과 들에 피는 장미라는 뜻으로 들장미 또는 야장미(野薔薇)라고도 한다.
2.찔레나무 꽃:
가지를 많이 만들며 가지가 활처럼 굽어지는 성질이 있어 울타리로도 많이 심고 있다.
양지가 바르면 어떤 토양에서도 잘 자라며, 추위에도 잘 견딘다.
뿌리가 얕게 내리지만 길고 거칠기 때문에 옮겨심을 때는 주의해야 한다.
봄에 새싹과 꽃잎을 날것으로 먹기도 하며, 가을에 열매를 따서 햇볕에 말린 것을 영실(營實)이라고 하여 준하제·이뇨제로 쓴다.
간혹 바닷가에서 붉게 피는 해당화와 혼동되기도 하나 다른 식물이다.
3.찔레나무 꽃:
찔레나무는 장미과(薔薇科 Rosaceae)에 속하는 낙엽관목 이다.
줄기와 어린가지에 잔털이 많고 갈고리 같은 가시가 달려 있지만 없는 경우도 있다.
잎은 5~9장의 잔잎으로 이루어진 겹잎으로, 잔잎은 길이가 2~8㎝ 정도이며 가장자리에는 톱니들이 있다.
잎자루 밑에 턱잎[托葉]이 있고, 턱잎가장자리에는 빗살 같은 톱니가 있으며, 턱잎의 아래쪽은 잎자루와 합쳐져 있다.
4.찔레나무 꽃:
찔레꽃의 향기는 사람을 사로잡을 만큼 짙고 신선하다.
우리 선조들은 찔레꽃을 증류하여 화장수로 즐겨 이용하였다.
이를 꽃이슬이라 하여 찔레꽃 향수로 몸을 씻으면 미인이 되는 것으로 믿었다.
찔레꽃에는 더위를 식히고 위장을 멎게 하는 등의 효능을 내는 성분이 들어있다.을
5.찔레나무 꽃:
찔레 열매에는 약간의 독성이 있으므로 독을 법제하여 쓰면
부종, 수종, 소변이 잘 안 나오는데, 야뇨증, 오줌싸개 등에 큰 효과가 있다.
찔레 열매를 말려서 술에 풀어 시루에 쪄서 말리기를 아홉 번 반복하였다가 가루 내어 복용한다.
6.찔레나무 꽃:
찔레 열매인 영실은
여자들의 생리통, 생리불순, 변비, 신장염, 방광염, 각기, 수종 등에 치료 효과가 뛰어난 약재이다.
8~9월에 반쯤 익은 열매를 따서 그늘에서 말려서 쓴다.
대개 물에 넣고 달여서 복용하거나 가루 내어 먹는다. 하루에 10~15g을 세 번으로 나누어 복용한다.
많이 먹으면 설사가 심하게 나므로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어서는 안 된다.
7.찔레나무 꽃:
반쯤 익은 열매를 따서 깨끗하게 씻어 독한 술에 담가 6개월쯤 두었다가
그 술을 조금씩 복용하는 방법도 있고 찔레
8.찔레나무 꽃:
찔레 뿌리는
산후풍, 산후골절통, 부종, 어혈, 관절염 등에 효과가 신비롭다.
특히 여성들의 산후풍, 산후골절통에는 찔레 뿌리로 술을 담가 먹으면 놀랄 만큼 효험을 본다.
가을철이나 이른 봄철에 찔레 뿌리를 캐내어 율무쌀로 막걸리를 빚어 자기 전에 약간 취할 만큼씩 마신다.
9.찔레나무 꽃:
찔레나무 뿌리에 기생하는 찔레버섯은
어린이 기침, 경기, 간질에 최고의 묘약이며 항암효과도 뛰어나다.
찔레나무 뿌리에 붙어 땅 속에서 자라므로 찾아내기가 어려운 것이 단점이다.
찔레나무 버섯은 달여서 복용하면 흙 냄새가 조금 날 뿐 별 맛이 없는데, 간질을 고칠수 있다.
10.찔레나무 꽃:
이른 봄철에 올라오는 찔레 새순도 좋은 약이 된다.
연한 순을 껍질을 까서 먹으면 떫으면서도 들큰한 맛이 있어서
옛날 농촌 아이들에게 좋은 간식거리였던 찔레순은 어린이의 성장발육에 큰 도움이 된다.
찔레순을 흑설탕이나 꿀과 함께 발효시켜 복용하면 생장조절 호르몬이 많이 들어 있어
아이들의 성장 발육에 효과가 큰 것은 물론이고 혈액순환이 좋아지고 변비, 수종, 어혈 등이 없어진다.
11.찔레나무 꽃
12.찔레나무 꽃
13.찔레나무 꽃
14.찔레나무 순
15.찔레나무 꽃
16.찔레나무 꽃
17.찔레나무 꽃
18.찔레나무 꽃
19.찔레나무 꽃
20.찔레나무
*찔레나무(영실):Baby Rese
1.뜻:고독,주의깊다
2.분류:장미과
3.분포:아시아
4.서식지:냇가,골짜기
5.꽃:흰색 또는 연분홍색의 꽃은5~8월에 핀다
6.열매:9월경에 붉은색으로 둥글게 익는다
7.효능:소변못볼때,부었을때,불면증.
8.찔레꽃 노래:백난아 노래,김영일 작사,김교성 작곡.
9.설명:장미과(薔薇科 Rosaceae)에 속하는 낙엽관목.
줄기와 어린가지에 잔털이 많고 갈고리 같은 가시가 달려 있지만 없는 경우도 있다.
잎은 5~9장의 잔잎으로 이루어진 겹잎으로, 잔잎은 길이가 2~8㎝ 정도이며 가장자리에는 톱니들이 있다.
잎자루 밑에 턱잎[托葉]이 있고, 턱잎가장자리에는 빗살 같은 톱니가 있으며, 턱잎의 아래쪽은 잎자루와 합쳐져 있다.
흰색 또는 연분홍색의 꽃은 5월경 가지 끝에 원추(圓錐)꽃차례를 이루며 무리져 피는데, 꽃자루에는 잔털이 있다. 꽃받침잎·꽃잎은 모두 5장이며, 수술은 많다.
열매는 9월경 붉은색으로 둥그렇게 익는다.
한국에서는 산과 들에 피는 장미라는 뜻으로 들장미 또는 야장미(野薔薇)라고도 한다.
가지를 많이 만들며 가지가 활처럼 굽어지는 성질이 있어 울타리로도 많이 심고 있다.
양지가 바르면 어떤 토양에서도 잘 자라며, 추위에도 잘 견딘다.
뿌리가 얕게 내리지만 길고 거칠기 때문에 옮겨심을 때는 주의해야 한다.
봄에 새싹과 꽃잎을 날것으로 먹기도 하며, 가을에 열매를 따서 햇볕에 말린 것을 영실(營實)이라고 하여 준하제·이뇨제로 쓴다.
간혹 바닷가에서 붉게 피는 해당화와 혼동되기도 하나 다른 식물이다.
*찔레꽃의 효능과 이용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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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 백난아
제목 : 찔레꽃
김영일 작사 / 김교성 작곡
제조회사 : 1941,태평레코드사
1.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나라 내 고향
언덕 위의 초가삼간 그립습니다
삼년 전에 같이 앉아 백인 사진
하염없이 바라보니 그리운 시절아
2. 달 뜨는 저녁이면 노래하던 그대와
연분홍 찔레꽃이 피었습니다
자주 고름 입에 물고 눈물 흘리며
이별가를 불러주던 못 잊을 사람아
.................................................................................
1941 년 5 월, 태평 레코드사에서는 이 '찔레꽃'을 내고
OK 레코드사에서는 고운봉의 '선창'을 발표했는데
별로 반응이 신통치 못했던 것이, 해방과 더불어 양사(兩社)의
이 두 노래가 약속이나 한 듯 각광(脚光)을 받아
히트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꿈에도 그리던 고향을 떠나 멀리 타향에서 핍박과 서러움에
눈물짓던 실향민들에게 찔레꽃 피는 고향을 노래한
백난아의 '찔레꽃'은 더 없는 향수를 자극하여 공감을 느끼게 하여
너도 나도 이 노래를 열창하게 되었던 것이다.
백난아(白蘭兒, 1923년 5월 16일 ~ 1992년)
제주도 출신[1]의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본명은 오금숙(吳金淑)이다.
1923년 5월 16일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1927년생이라는 설도 있지만 데뷔 연도와 여러 가지 상황을 미루어 짐작해볼 때 신빙성은 떨어진다.[출처 필요] 서울양재고등여숙을 졸업하고, 1940년 태평레코드와 조선일보가 공동으로 주최한 콩쿠르 대회에서 2등으로 입상하였다. 같은 해, 선배가수 백년설에게 ‘ 백난아’라는 예명을 받고, 오동동 극단을 취입하였다.
〈오동동 극단〉이 히트되자 그녀는 계속 〈갈매기 쌍쌍〉, 〈망향초 사랑〉, 〈땅버들 물버들〉, 〈도라지 낭랑〉, 〈아리랑 낭랑〉, 〈찔레꽃〉, 〈흥아의 봄〉 등을 취입하였다. 대한민국이 일본에게서 해방될 직전까지 태평레코드에 전속으로 있으면서, 많은 인기를 얻었다. 해방 직후에는 ‘파라다이스 쇼단’을 운영하며 대한민국 전국 순회공연을 다녔고, 1949년부터는 럭키레코드 전속으로 〈금박댕기〉, 〈낭랑 18세〉, 고려레코드에서 〈인도야곡〉을 발표했다.
그러나 곧 한국 전쟁이 일어났고, 그녀는 전쟁 중 연예인들의 아지트였던 대구로 피난하였다. 그 곳에서 여러 연예인들과 활동하며 한때는 군예대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전쟁 후에는 태평레코드와 서라벌레코드에서 활동하며, 〈멕시코 나이트〉, 〈고랑포 아낙네〉 등을 취입하였다.
1960년대까지도 활발히 신곡 취입을 하였으며, 그 이후에는 주로 극장무대에서 활동하였다.
본격적인 TV시대가 열리면서, 그녀는 원로가수 대접을 받으며 방송출연을 활발히 하였는데 특히 〈가요무대〉에서 자주 출현하였다. 그러던 중, 1992년 대장암이 발병했고, 평소 지병이던 심장병이 겹쳐 결국 70세로 세상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