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덕교회(옛 대구형무소 터)는 대구 중구 근대로의 여행 골목투어 제4코스 삼덕봉산문화길에 속합니다.
일제강점기 독립투사들이 옥고를 치른 옛 대구형무소 터를 소개합니다.
대구형무소는 1908년에 대구부에 대구감옥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1923년 5월 5일 조선총독부령 제72호에 따라 대구형무소로 개칭하였습니다.
위치는 대구시 중구 공평로 22 삼덕교회 일대(삼덕동2가 149-12 일대) 입니다.
1. 대구형무소는 그 당시 복심법원(현재의 고등법원)이 한강 이남에는 대구에만 있었습니다.
경상도는 물론 전라도와 충청도, 나아가 제주도의 독립운동가들까지 대구형무소에 갇혀야 했습니다.
2. 삼덕교회는 1979년 봉산동 예배당이 도시계획에 수용되면서 대구형무소 사형장 터가 있었던 이 자리에 십자가를 옮겨 세웠습니다.
2020년 예배당을 새로 지으면서, 이 세상에서 고난을 받으셨던 예수님처럼, 조국의 독립을 위해 고초를 격었던 수많은 독립운동가처럼, 내가 죽어 다른 이를 살리는 십자가 정신을 후대에 널리 전하고자 하는 다짐으로 교회를 지었습니다.
3. 삼덕교회에 대구광역시 중구청 공개공지안내 표시판입니다.
이곳은 중구청 건축주택과에서 삼덕교회 1층 입구에 대구 시민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는 공개공지 구역입니다.
4. 공개공지 구역 대구형무소 사적 안내구역 에는 대구형무소 연혁판, 대구형무소 배치도, 일제시대 대구형무소 외부
전경 사진, 일제시대 대구형무소 청사 내부 사진, 1950년대 대구형무소 구내전경 사진, 1950년대 대구형무소 정문 사진, 이육사 광야 시판, 독립투사 이름 벽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5. 대구형무소 연혁판에는 3.1운동 무렵 5천여 명이 수감되었던 한강 이남에서 가장 큰감옥이었습니다.
내용은 대구형무소 연혁, 삼덕교회 연혁이 새겨져 있습니다.
6. 당시 대구형무소 배치도입니다.
처음에는 3,800평 정도였으나, 수차례 증축으로 7,800평으로 확장되었다고 합니다.
배치도에는 청사, 교소, 교장, 화장실, 남 여옥사, 형장, 의무소, 공장, 이발소, 작업장, 신사 등이 있습니다.
7. 일제시대 대구형무소 외부 전경사진입니다.
대구형무소는 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의사,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의거 장진홍 의사 등 수많은 독립투사가 수감된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8. 일제시대 대구형무소 내부 청사 사진입니다.
대구형무소는 일제강점기 서울, 평양과 함께 전국 3대 형무소로 꼽혔으며 1919년 3월 독립만세 이후 5000여명의 조선인이 갇혀 있었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9. 1950년대 대구형무소 구내전경 사진입니다.
대구는 항일 독립운동의 성지로 불릴 만큼 항일 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졌던 곳입니다.
10. 1950년대 대구형무소 정문앞 사진입니다.
면회온 가족들이 줄을서서 대기하고 있습니다.
11. 이육사 광야 시가 새겨져있습니다.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진 못하였으리라~~~~
12. 붉은 벽돌 담장에는 당시 독립투사들 이름이 적혀있습니다.
대구형무소에는 1919년 3월 독립만세 이후 5000여명의 조선인이 갇혀 있었답니다.
13. 삼덕교회 60주년기념관에 있는 대구광역시 중구청 공개공지안내 표시판입니다.
이 곳은 중구청 건축주택과에서 삼덕교회 2층에 대구 시민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는 공개공지 구역입니다.
옛 대구형무소 역사기념관 조성사업은 중구가 2층내부 300여㎡ 공간을 리모델링하고 관련 콘텐츠를 마련합니다.
기념관은 2023년 문을 열 예정입니다.
14. 이 곳은 삼덕교회 60주년 기념관 빌딩입니다.
2020년 예배당을 새로 지으면서 삼덕교회 60주년 기념관 빌딩도 개관 하였습니다.
15. 삼덕교회 60주년 기념관 빌딩에서 삼덕교회로 가는 길목벽에 민족시인 이육사 전시관 건립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민족시인 이육사는 17번 옥살이, 1927년 첫 수감 수인번호 이육사(264), 1944년 북경 감옥소에서 40세에 순국하였습니다.
이육사(이원록) 시인이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의거와 연관돼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는데 투옥 당시 수인번호가 264번이어서 호를 육사(陸史)로 택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16. 삼덕교회 60주년 기념관 1층 복도 벽에는 민족시인 이육사 동판이 설치되어 이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서 강렬한 민족의식을 갖추고 있던 이육사(이원록)는 일찍부터 각종 독립운동단체에 가담하여 항일투쟁의 불꽃을 피웠고, 생에 후반에는 총칼 대신 문학으로 일제에 저항했던 애국지사였습니다.
동판에는 대구형무소 배경 창문에 나비가 날고 이육사 수감번호 동상과 좌측에는 이육사 동상 옆에 에 이육사 황혼 시가 새겨져있습니다.
17. 삼덕교회 버스정루장 앞 삼덕교회 60주년 기념관 빌딩 화단에는 옛 대구형무소 상장조형물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상징 조형물은 이곳이 참혹한 역사의 장소임을 알리기 위해 민족시인 이육사 선생이 쇠창살에 가친 모습으로 제작되었답니다.
삼덕교회 앞을 지나가는 많은 시민들이 선열들의 항일 정신과 고결한 희생을 되새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네이버지도에 삼덕교회 표시해주세요.
*유튜브 동영상 링크 바로가기 : 화면 좌측 하단 다음에서보기 눌러주세요!
*대구형무소 터
주소 : 대구시 중구 공평로 22 삼덕교회 일대(삼덕동2가 149-12 일대)
1908년에 대구부에 대구감옥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1909년 10월 21일 조선통감부령 제31호에 따라 본감 9개소, 분감 9개소를 신설했고, 1910년에 10월 1일 조선총독부령 제111호에 따라 본감 8개소, 분감 13개소로 감옥체제를 개편했습니다.
대구 중구 삼덕동(경북대학교 치과병원~일신학원 사이)으로 이전했으며, 1923년에는 5월 5일 조선총독부령 제72호에 따라 대구형무소로 개칭하였습니다.
처음에는 3,800평 정도였으나, 수차례 증축으로 7,800평으로 확장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복심법원(현재의 고등법원)이 한강 이남에는 대구에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경상도는 물론 전라도와 충청도, 나아가 제주도의 독립운동가들까지 대구형무소에 갇혀야 했던 것입니다.
이육사(李陸史) 등 수많은 독립운동가가 이곳에서 수형생활을 하였습니다.
*삼덕교회, 대구시 중구와 '옛 대구형무소 이육사 기념관' 조성.
대구 삼덕교회는 일제강점기 독립투사들이 옥고를 치른 옛 대구형무소 터에 세워져 있습니다.
이 교회의 일부 공간이 대구형무소와 이육사(이원록) 시인을 기념하는 공간(사진)으로 조성됩니다.
대구 중구는 민족지도자들의 항일정신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지역의 교육·관광자원으로 활용할 방침입니다.
대구시 중구는 2021년 7월 27일 삼덕교회와 ‘옛 대구형무소 이육사 기념관(가칭)’ 조성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습니다.
중구청에 따르면 대구형무소는 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의사,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의거 장진홍 의사 등 수많은 독립투사가 수감된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육사(이원록) 시인이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의거와 연관돼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는데 투옥 당시 수인번호가 264번이어서 호를 육사(陸史)로 택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대구형무소는 일제강점기 서울, 평양과 함께 전국 3대 형무소로 꼽혔으며 1919년 3월 독립만세 이후 5000여명의 조선인이 갇혀 있었다는 증언도 있습니다.
지역의 역사적 장소로 ‘중구 근대로의 여행 골목투어’ 코스에 포함돼 있지만 삼덕교회 측이 마련한 기념시설만 존재해 콘텐츠 부족에 대한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업무협약에 따라 삼덕교회가 공간을 무상 임대하면 중구가 내부 300여㎡ 공간을 리모델링하고 관련 콘텐츠를 마련합니다.
공간 조성에 12억원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중구는 전시관 예산 마련 방안을 연구할 방침입니다.
중심 콘텐츠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관련 기관들은 이육사 시인과 대구형무소를 놓고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둘지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기념관은 2023년 문을 열 예정입니다.
중구는 이육사 문학체험 프로그램, 도심 문화탐방 골목투어와 연계된 프로그램 등을 개발해 기념관 개관에 맞춰 운영할 예정입니다.
대구는 항일 독립운동의 성지로 불릴 만큼 항일 운동이 활발하게 펼쳐졌던 곳으로 옛 대구형무소 터 같은 자취가 곳곳에 남아있으며 삼덕교회와 함께 중구 독립운동 역사 기념 공간을 만들어 중구의 문화, 관광 콘텐츠 질을 높일 것입니다.
*대구시 중구 삼덕교회 앞 상징조형물 설치
대구시 중구는 2021년 11월 23일 현 삼덕교회 앞에 옛 대구형무소 상징조형물을 설치하고 제막식을 개최했습니다.
상징 조형물은 이곳이 참혹한 역사의 장소임을 알리기 위해 민족시인 이육사 선생이 쇠창살에 가친 모습으로 제작됐습니다.
이를 통해 삼덕교회를 지나가는 많은 시민들이 선열들의 항일 정신과 고결한 희생을 되새길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옛 대구형무소는 애국시인 이육사가 3년간 형을 살았던 곳이자,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사건을 주도한 장진홍 열사가 사형을 선고받고 자결한 장소로, 이들을 포함해 모두 206명의 애국지사가 여기서 혹은 이곳에서 겪은 고문의 영향으로 순국했습니다.
한편 이번 조형물 설치는 옛 대구형무소 역사기념관 조성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됩니다.
대구 중구는 2021년 7월 21일 삼덕교회와 업무협약을 맺고 삼덕교회 내부 공간에 옛 대구형무소 기념관 조성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기념관 조성 사업은 2022년 조성공사와 전시시설 제작 설치 완료, 2023년 시설 운영 시작을 목표로 합니다.
*삼덕교회
삼덕교회는 1979년 봉산동 예배당이 도시계획에 수용되면서 대구형무소 사형장 터가 있었던 이 자리에 십자가를 옮겨 세웠습니다.
2020년 예배당을 새로 지으면서, 이 세상에서 고난을 받으셨던 예수님처럼, 조국의 독립을 위해 고초를 격었던 수많은 독립운동가처럼, 내가 죽어 다른 이를 살리는 십자가 정신을 후대에 널리 전하고자 하는 다짐을이 벽에 새깁니다.
*이육사
일제 강점기에 시인이자 독립운동가로서 강렬한 민족의식을 갖추고 있던 이육사(이원록)는 일찍부터 각종 독립운동단체에 가담하여 항일투쟁의 불꽃을 피웠고, 생에 후반에는 총칼 대신 문학으로 일제에 저항했던 애국지사였습니다.
광야-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디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진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光陰)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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