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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의 원조!]2.28 민주화 운동 53주년 발자취를 아시나요?....아! 대한민국/가수 정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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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운동의 원조]2.28 민주화 운동 53주년 발자취를 아시나요?....

-아! 대한민국/가수 정수라

-2.28 민주화 운동

-2.28기념 중앙공원

 

 

 

 

 

 

 

 

 화보...2.28 민주화 운동 53주년 발자취.. 2010년 02월 27일 | 신영길 

1.2.28기념 중앙공원

2.2.28기념 중앙공원

3.2.28기념 중앙공원

4.2.28기념 중앙공원

5.2.28기념 중앙공원

6.2.28기념 중앙공원

 

[화보] 2·28 민주화운동 53주년
2·28 기념관 오늘 완공…대구 민주화운동 산실 자존심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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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53주년을 맞는 2·28 대구민주화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한 사업이 다양하게 추진된다.

2·28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이하 2·28사업회)는 '2·28 민주화운동기념관'조성할 계획이다.

기념관은 대구 남구 명덕네거리 명덕초교에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연건평 2천500㎡)로 건설될 예정이며, 지난해 확정한 공사비(국비 80억원) 가운데 25억원을 들여 하반기중에 착공하고 2013.년 2월 말 완공예정이다. 2·28사업회는 기념관을 지역단위 공공도서관으로 꾸며 청소년과 일반 시민들이 많이 찾는 공간으로 만들 계획이다.

2·28사업회는 또 2·28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초등학교 교과서에 민주화운동사 부분에 두줄 가량 실린 2·28운동의 내용을 보강하는 작업도 추진키로 했다.

안인욱 2·28사업회 공동의장은 “2·28 민주운동은 3·15 마산의거와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됐지만 그동안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며 “제50주년 기념사업으로 중·장기 발전계획을 충실히 실행해 대구가 ‘민주화운동의 산실’이란 자존심을 되찾는 데 힘쓰겠다”고 말했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2·28 대구민주화 운동

부패한 이승만 자유당 정권에 항거해 1960년 2월 28일 일어난 학생 민주화 의거다. 정부가 민주당 장면 후보의 강연 참석을 막기 위해 일요일 등교 명령을 내리자 당시 대구 고교생 1천200여명이 대규모 시위로 항거했다. 이날 학생의거는 이후 3·15 마산의거, 4·19 혁명의 도화선이 돼 이승만 정권이 물러나고 새 정부가 들어섰다.

사진정리=권정호 전 매일신문 사진부장·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2.28대구 민주화 운동 50주년
김풍삼고문
기사 입력시간 : 2010-02-28 21:16
 
오늘이 2.28 53주년을 맞는 날이다. 53년 전 경찰관이 휘두르는 곤봉을 피해 중앙로를 달리면서 “횃불을 밝혀라 동방의 별들아”,“학원의 자유를 달라”고 외쳤던 고등학생들이 일흔을 눈 앞에 둔 할아버지가 되었다. 세월의 무상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2.28은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진원(震源) 이라고 할 수 있다. 해방 후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학생데모는 대구 2.28학생 시위가 최초였기 때문이다. 50년대 후반 이승만(李承晩) 정부는 각종 선거 부정에 얼룩진 독재정부였다.

 
국회의원 선거는 3인조?9인조로 나누어 투표한 내용을 조장에게 공개 한 후 투표함에 넣는 조직적인 부정선거와 개표시에는 갑자기 고의적으로 전기 불을 정전하여 어두운 틈을 타서 투표함을 바꿔치기하는 올빼미작전, 피아노?쌍가락지표로 당선 유력한 야당후보의 지지 표를 무효화 시키는 등 부정 개표가 전국 곳곳에서 일어났지만 대학생들과 기성인들은 꿈쩍 하지 않았다.

 
이와같이 당시에 모든 국민들이 부정과 불의에 침묵하고 있을 때 대구의 어린 고등학생들이 용기 있게 정의를 요구 하면서 민주 화로에 불을 지핀 것이다. 대구에서 지핀 이 불은 마산의 3.15 와 서울의 4.19로 확산 되어 마침내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발화점이 된 것이다.

 
대구 고등학생들이 이 얼마나 장한 일을 해 낸 것인가.이처럼 역사적인 일에 고교 재학중 참여 했던 이해봉(李海鳳 )국회의원이 의원 123명의 동의를 받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법 개정안을 발의하여 지난해 12월29일 국회에서 통과 되었다. 이제 2.28 대구 민주화 운동이 50년 만에 3.15와 4.19와 함께 비로서 법적지위를 갖게 된 것이다.

*세상을 떠난 2.28의 두 별

2.28을 사전에 계획하고 당일 교사들의 완강한 만류를 뿌리 치고 이를 결행 하는데 앞장을 선 잊을수 없는 별들이 있다.

 
당시 이대우(李大雨)경북고학생회 부회장과 손진홍(孫晋洪)대구고등학생회장 이다. 이들은 아쉽게도 지병으로 이미 세상을 떠났다.

 

이들이 생전에 전하는 말에 따르면 27일 이 대우 학생집에서 대구고. 경북고.부속고 학생간부 7~8명이 모여 일요 등교의 부당함에 격분하고 28일 시위 할 것과 당일 거사 계획 구호 등을 결정 하고 나니 참석한 학생들이 모두가 숙연해 지더라고 했다. 28일 거사를 하고 나면 학교에서 퇴학은 물론 감옥에 들어 갔다 나오면 무엇을 하고 살아 갈 것인가 생각하니 앞길이 막막 했다고 했다.

 
이런 무거운 침묵을 깨고 한 사람이 그때 유행하던 “유정 천리” 유행가를 불러서 모두 따라 불렀다고 했다. 감옥에서 나오면 전과자가 되어 아무대도 취직 할 수 없으면 유행가 가사 처럼 강원도 두메산골에 들어가서 감자 심고 수수심어 살자고 노래 한 것이다.

 
이 대우 학생은 28일 경북고 학생들과 함께 경북도청으로 달려가 도청 단상에 올라 선언문을 낭독 했다. 이후 그는 2.28 1세대들과 함께 대구 학생 민주의거 정신을 오래 간직하기 위여 기념사업회를 조직 하고 기념탑 건립과 2.28중앙공원 등을 세우는데 온 힘을 모았다.

 
그는 지난해 9월 세상을 떠나면서 서울 수유리 4.19묘지에 그의 흔적을 남겼다. “2.28이 없었으면 4.19는 없었다” 는 평소 그의 주장 처럼 2.28과 4.19의 역사적 끈을 단단히 동여매어 놓고 저 세상으로 떠난 것이다.

터질듯한 가슴으로

손 진홍 학생은 27일 밤 대구고등 학생회 간부집을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28일 결행을 알렸고, 28일 오전 9시 등교하여 각 학교 사정을 알아보기 위하여 경북고와 부속고교에 대구 고교생 2명을 파견했다.

 

그 결과 경북고와 부속고교에서는 교사들이 완강하게 학생들의 데모를 저지 하기 때문에 교내에서 선언문만 낭독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그는 자전거를 타고 직접 부속고교와 경북고교를 돌며 당초 계획대로 결행 할 것을 독려 했다고 했다.

 
그가 이날 부속고와 경북고를 거쳐 학교로 돌아올때 남문시장에서 대구고 까지는 비포장 도로로 겨울내 언 땅이 녹아 질퍽하여 자전거 바퀴가 구르지 않았다고 했다.

 
이 도로를 자전거를 타고 학교까지 가는데 뒤에서는 친구가 자전거를 밀었고 그는 가쁜 숨 을 몰아 쉬면서 자전거 폐달을 힘들게 밟았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니 그는 그때 다급하고 터질듯한 가슴으로 새로운 민주의 역사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지병으로 지난 2001년 세상을 떠나기 전 “2.28은 어떤 특정 고등학교에만 국한 할 것이 아니라 당시 대구학생 모두와 대구시민의 뜻이 하나가 되어 이룬 것이라고 기록 되었으면 한다”

 

고 늘 말 했다. 그는 그의 호 독봉(獨峯)처럼 우리나라 민주역사에서 하나의 값진
봉우리를 마련한 후 지금 고향마을에서 외롭게 잠들어 있다.

 

 
1960년 2월 28일에 있었던 대구 학생 민주화 운동에 관한 내용입니다. 배경과 과정.. 그리고 228에 관한 여러가지 견해와 사진도 담겨져있습니다.

2? 28 학생운동이 자유당 독재정권의 타도와 같은 구체적인 정치적 목표를 가지고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또 자신들의 행동이 학생혁명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는 계산속에서 움직인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2? 28 학생운동이 단순히 일요등교에 따른 단순한 순간적인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뚜렷한 이성적 판단에 근거한 시대의식의 반영으로 일어났으며, 현대 학생운동의 시작을 알리는 민주주의 실천운동이었다는 사실에 동의하고 있다.

 

 그리고 2? 28 학생운동의 전개과정에서 학생대표들은 시위를 위해 하루전날부터 구호를 다듬고 계획을 세웠으며 당시에 외쳤던 구호가 민주주의에 바탕을 둔 비판적 목적의식을 뚜렷이 보여주는 것임을 그 근거로 들고 있다. 그 후 전국 곳곳에서 일어난 고등학생들의 시위나 4? 19혁명은 2? 28에서 비롯되었다고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또한 어떤 학자는 2? 28이 한국 학생운동사의 위치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한국 근? 현대사에서 학생운동은 3? 1운동, 6? 10만세운동 광주학생운동 등의 한국 독립운동에서 광복 후 6? 25를 거치면서 1960년대부터는 민주화운동으로 전개되었다.  

  

이때 2? 28이 1960년부터 30여 년간 계속되는 독재정치와 부정부패에 대응한 학생중심의 민주화운동의 출발점으로 본다는 것이다.

*ps:2.28민주화운동 기념회관이 2013.2.28일 개관 되었습니다.

 

 

정수라/아! 대한민국

 

  아! 대한민국 / 가수 정수라

 

 

 

 

하늘엔 조각구름 떠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있고

저마다 누려야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

뚜렷한 사계절이 있기에 볼수록 정이 드는 산과들

우리의 마음 속에 이상이 끝없이 펼쳐지는 곳

원하는 것은 무엇이건 나눌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어

이렇게 우린 은혜로운 이 땅을 위해

이렇게 우린 이 강산을 노래 부르네 

아!아! 우리 대한민국 아!아! 우리 조국

아!아! 영원토록 사랑하리라

 

 

도시엔 우뚝솟은 빌딩들 농촌에 기름진 논과 밭

저마다 자유로운 속에서 조화를 이뤄가는 곳

도시는 농촌으로 향하고 농촌은 도시로 이어져

우리의 모든 꿈은 끝없이 세계로 뻗어가는 곳

원하는 것은 무엇이건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어

이렇게 우린 은혜로운 이 땅을 위해

이렇게 우린 이 강산을 노래 부르네

 

아!아! 우리 대한민국 아!아! 우리 조국

아!아! 영원토록 사랑하리라

 

우리 대한민국 아!아! 우리 조국

아!아! 영원토록 사랑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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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자퀴즈 152 : 동물원의 배고픈 사자가 철창 밖에 있는 사람들을 보고 한말은?

 *힌트:인터넷에 검색하면 정답이 있습니다. ㅎㅎㅎㅎ 매주 월요일 정답 공개 합니다 ㅋㅋㅋㅋ   

*오늘도 신박사와 함께 하시면 즐거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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