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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기자/중구 블로그 기자

[대구여행] 뇌출혈 고혈압약 원료 황색색소 원료로 쓰이고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에 꽃이피는 최제우나무(회화나무) 꽃,효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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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에 꽃이피는 최제우나무(회화나무) 꽃 -

*대구광역시 중구 종로초등학교수령이 400년 정도 된 이 회화나무는 억울하게 희생된 그의 감옥생활을 지켜보았을 것으로 생각되어 '최제우 나무'라고 이름하였습니다.

일제의 경상감영 감옥이라는 가슴 아픈 역사의 흔적이 묻어있는 건물의 터이기도 합니다.

최제우나무는 최근 2년간 부분적으로 꽃이 피어서 아쉬웠는데, 3년만에 전체적으로 꽃이 활짝 피었습니다 

억울하게 희생된 그의 감옥생활이 아쉬워서 해갈이를 하는걸까요~~~

회화나무의 꽃말은 '망향' 입니다.

 

 

 

1. 최제우나무(회화나무)는 대구시 중구청 보호수 지정번호 01-04 2003.1.30. 입니다.

소재지는 대구시 중구 경상감영길 49.

수령 400년, 수고 17m, 가슴높이둘레 2.8m 입니다.

관리자는 대구광역시 중구청장입니다.

 

2. 대구종로초등학교는 1900년 11월 11일 미국 선교사 아담스가 당시 제일교회 입구 대문채를 교사로 정하여, 남학교인 대남소학교를 세웠습니다.

1926년 4월 희도보통학교로 교명이 변경되었으며, 1938년 희도심상소학교로, 1941년 4월에 희도국민학교로 다시 변경되었습니다.

광복 후 1946년 3월에 사립에서 공립으로 바뀌었으며, 1954년 10월 교사를 현재의 위치로 신축 이전하였습니다.1955년 3월 대구종로국민학교로 교명이 개칭되었습니다.

 

3. 보호수 지정사유는 인근 경상감영의 역사와 함께한 노거수로 수형이 아름다울뿐만 아니라 도심속에서는 보기 드물게 수형이 오래된 수목으로 그 보존가치가 있어서 지정되었습니다.

 

4. 최제우는 경주 출신으로 호는 '수운'입니다.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평등 사상을 주창하는 민종종교인 동학을 창시했습니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민심을 혼란케 한다는 죄목으로 경상감영감옥 현, 대구종로초등학교에 구속시켰다가 참형을 결정하여 아미산에서 순도하였습니다.

 

5. 회화나무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에 나비모양의 연노랑 꽃을 나무 가득히 피웁니다.

일제히 피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시간차를 두고 한쪽은 꽃이 피어나고 있고, 일부는 살랑바람에도 후드득후드득 떨어져 나무 아래에 두툼한 꽃덮개를 만들어놓는다.

 

6. 회화나무 꽃은 그냥 꽃이 아닙니다.

10~25퍼센트에 이르는 ‘루틴(rutin)’이란 황색색소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루틴은 특히 종이를 노랗게 물들이는 천연염색제로 쓰입니다.

또 모세혈관의 강화작용을 도와 뇌출혈 예방에 효과가 있고, 고혈압 약을 만드는 원료로 쓰이기도 합니다.

 

7. 중국이 고향인 회화나무는 상서로운 나무로 생각하여 중국인들도 매우 귀하게 여겼습니다.

회화나무를 문 앞에 심어두면 잡귀신의 접근을 막아 그 집안이 내내 평안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8. 중국이 고향인 회화나무는 상서로운 나무로 생각하여 중국인들도 매우 귀하게 여겼습니다.

회화나무를 문 앞에 심어두면 잡귀신의 접근을 막아 그 집안이 내내 평안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9. 조선시대 궁궐의 외조는 왕이 삼공과 고경대부 및 여러 관료와 귀족들을 만나는 장소인데, 이 중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의 삼공자리에는 회화나무를 심어 특석임을 나타내는 표지로 삼았다는 것입니이다. 

 

10. 창덕궁의 돈화문 안에 있는 세 그루의 회화나무는 바로 외조에 해당하는 곳입니다.

회화나무는 이렇게 꼭 외조의 장소만이 아니라 궁궐 안에 흔히 심었고, 고위 관직의 품위를 나타내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여 만년을 보내는 고향 땅에도 회화나무 심기를 즐겨했답니다.

 

11. 다른 이름으로는 학자수가 있으며, 영어 이름도 같은 의미인 스칼러 트리입니다.

나무의 가지 뻗은 모양이 멋대로 자라 학자의 기개를 상징한다라는 풀이도 있습니다.

반대로 아무 곳이나 이익이 있는 곳에는 가지를 뻗어대는 곡학아세를 대표하는 나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합니다. 

 

12. 회화나무는 여러 이유로 궁궐은 물론 서원, 문묘, 이름난 양반 마을의 지킴이 나무로 흔히 만납니다.

한자로는 ‘괴목이라 하고 그 꽃을 괴화라고 하는데, 괴의 중국 발음이 회이므로 회화나무, 혹은 회나무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13. 회화나무의 나비모양의 연노랑 꽃은 시간차를 두고 한쪽은 꽃이 피어나고 한쪽은 살랑바람에도 후드득후드득 떨어져 나무 아래에 두툼한 꽃덮개를 만들어놓습니다.

 

14. 잔디위에도 회화나무에서 낙화된 연노랑 꽃이 나비가 내려않은 모습을 하고있습니다.

 

15. 회화나무는 전국 어디에서나 심고 있으며 키 20미터 이상, 줄기둘레가 네댓 아름에 이르는 큰 나무입니다.

 

16. 회화나무는 네 그루의 천연기념물과 320여 그루의 보호수 고목나무가 있으며, 느티나무, 팽나무, 은행나무와 함께 오래 살고 크게 자라는 나무로 유명합니다. 

 

17. 회화나무 줄기는 회갈색으로 세로로 깊게 갈라지고 어린 가지가 녹색인 것이 특징입니이다. 

나무껍질은 회암갈색이고 세로로 갈라지고, 일년생가지는 녹색을 띱니다. 

 

18. 회화나무 꽃은 8월에 나비 모양을 한 길이 12~15mm의 황백색 잔꽃이 새로 나온 가지 끝에서 원추 꽃차례를 이루며 달려 핍니다.

꽃받침통은 종 모양이고 짧은 털이 있습니다.

수술은 10개이며 길이가 서로 다릅니다. 

 

19. 대구종로층학교 담장에는 모자이크타일 벽화가 있습니다.

대구광역시 중구의 인물로는 독립운동가 이상정, 민족의 변호사 이인,  한국근대서화 서예가 서동균, 운수좋은날 소설가 현진건, 한국 사회학의 개척자 사회학자 이상백, 빼앗긴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인 이상화, 국채보상운동의 민족운동가 서상돈, 대구시민의 노래 작사자 백기만, 계산성당 감나무 천재화가 이인성, 동무생각 작곡가 박태준, 근대서화의 태두 서화가 서병오, 여성 국채보상운동 정경주 등이 있습니다.

 

20. 유관순열사 외에도 대구광역시 중구에는 김마리아, 어윤희, 이선애, 이애라, 정정화, 조마리아, 차경신, 차미리사, 최용신 등 수많은 여성독립운동가 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들의 애국심을 영원히 기억해야 합니다. 

 

※네이버지도에 대구종로초등학교 표시해주세요.

 

 

 

*회화나무

분률 : 낙엽 활엽 교목 콩과

학명 : Sophora japonica

꽃말 ; 망향

생약명 : 괴화(槐花)

크기 : 높이 10 ~ 30m, 지름 1 ~ 2m.

회화나무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한여름에 나비모양의 연노랑 꽃을 나무 가득히 피운다. 일제히 피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시간차를 두고 한쪽은 꽃이 피어나고 있고, 일부는 살랑바람에도 후드득후드득 떨어져 나무 아래에 두툼한 꽃덮개를 만들어놓는다.

회화나무 꽃은 그냥 꽃이 아니다. 10~25퍼센트에 이르는 ‘루틴(rutin)’이란 황색색소로 무장하고 있다. 루틴은 특히 종이를 노랗게 물들이는 천연염색제로 쓰인다. 또 모세혈관의 강화작용을 도와 뇌출혈 예방에 효과가 있고, 고혈압 약을 만드는 원료로 쓰이기도 한다.

중국이 고향인 회화나무는 상서로운 나무로 생각하여 중국인들도 매우 귀하게 여겼다. 회화나무를 문 앞에 심어두면 잡귀신의 접근을 막아 그 집안이 내내 평안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옛날 중국 궁궐 건축은 주나라의 관제를 기록한 《주례(周禮)》1) 에 따랐다. 여기에는 ‘면삼삼괴삼공위언(面三三槐三公位焉)’이라 하여 회화나무 세 그루를 심는 것을 원칙으로 했다. 즉 궁궐의 외조(外朝)는 왕이 삼공과 고경대부 및 여러 관료와 귀족들을 만나는 장소인데, 이 중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의 삼공자리에는 회화나무를 심어 특석임을 나타내는 표지로 삼았다는 것이다. 창덕궁의 돈화문 안에 있는 세 그루의 회화나무는 바로 외조에 해당하는 곳이다. 회화나무는 이렇게 꼭 외조의 장소만이 아니라 궁궐 안에 흔히 심었고, 고위 관직의 품위를 나타내는 뜻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벼슬을 그만두고 낙향하여 만년을 보내는 고향 땅에도 회화나무 심기를 즐겨했다.

다른 이름으로는 ‘학자수(學者樹)’가 있으며, 영어 이름도 같은 의미인 ‘스칼러 트리(scholar tree)’다. 나무의 가지 뻗은 모양이 멋대로 자라 ‘학자의 기개를 상징한다’라는 풀이도 있다. 반대로 아무 곳이나 이익이 있는 곳에는 가지를 뻗어대는 곡학아세(曲學阿世)를 대표하는 나무라는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어쨌든 옛 선비들이 이사를 가면 마을 입구에 먼저 회화나무를 심어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는 선비가 사는 곳’임을 만천하에 천명했다. 더불어 뒷산에는 기름을 짤 수 있는 쉬나무를 심어 불을 밝히고 글을 읽는 것을 자랑으로 삼았다. 이렇게 회화나무는 여러 이유로 궁궐은 물론 서원, 문묘, 이름난 양반 마을의 지킴이 나무로 흔히 만난다.한자로는 ‘괴목(槐木)’이라 하고 그 꽃을 ‘괴화’라고 하는데, 괴의 중국 발음이 ‘회’이므로 회화나무, 혹은 회나무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느티나무도 괴목이라고 쓰는 경우가 많아 옛 문헌에 나오는 괴가 회화나무인지 느티나무인지는 앞뒤 관계로 판단하는 수밖에 없다.

회화나무는 전국 어디에서나 심고 있으며 키 20미터 이상, 줄기둘레가 네댓 아름에 이르는 큰 나무다. 네 그루의 천연기념물과 320여 그루의 보호수 고목나무가 있으며, 느티나무, 팽나무, 은행나무와 함께 오래 살고 크게 자라는 나무로 유명하다. 《제민요술(齊民要術)》2) 에는 회화나무를 올바르게 키우는 방법을 이렇게 적고 있다. “삼 씨와 회화나무 씨를 같이 섞어 심으면 곧게 자라는 삼을 따라 회화나무도 같이 곧바로 자란다”라는 것이다. 삼을 베어 버리면 회화나무만 남게 된다. 이렇게 묘목을 만들어 필요한 곳에 옮겨 심는다. 지금 본받아도 좋을 만큼 기발한 착상이다.줄기는 회갈색으로 세로로 깊게 갈라지고 어린 가지가 녹색인 것이 특징이다. 나무껍질은 회암갈색이고 세로로 갈라지고, 일년생가지는 녹색을 띤다. 잎은 아까시나무와 아주 비슷하게 생겼고, 끝이 점점 좁아져서 뾰족해지고 어긋나며 7∼17개의 작은 잎으로 구성된 1회 홀수 깃꼴겹잎이다. 작은 잎은 길이 2~6cm, 나비 15~25mm의 달걀꼴 또는 계란 모양의 타원형이며 끝이 날카롭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앞면은 녹색이나 뒷면은 회백색으로 하얀 잔털이 촘촘히 나 있다. 잎자루는 짧고 누운 털이 있다. 꽃은 8월에 나비 모양을 한 길이 12~15mm의 황백색 잔꽃이 새로 나온 가지 끝에서 원추 꽃차례를 이루며 달려 핀다. 꽃차례의 길이는 20~30cm이다. 꽃받침통은 종 모양이고 짧은 털이 있다. 수술은 10개이며 길이가 서로 다르다. 열매는 9~10월에 길이 5~8cm의 협과 꼬투리가 염주처럼 잘록잘록한 모양으로 아래를 향해 달려 노랗게 익는데 약간 육질이다. 열매 속에 1∼4개의 갈색 씨가 들어 있다.    

《동의보감》에는 “회화나무 열매, 가지, 속껍질, 꽃, 진, 나무에 생기는 버섯까지 모두 약으로 쓴다”라고 했다. 회화나무 목재는 재질이 느티나무와 비슷하여 기둥과 가구재 등으로 쓸 수 있다. 두 나무를 다 같이 ‘괴(槐)’로 쓴 것은 이렇게 재질이나 쓰임이 비슷한 이유도 있다.

효능

주로 순환계·이비인후과 질환을 다스린다.

관련질병: 각혈, 고혈압, 뇌일혈, 명목, 변혈증, 보간·청간, 보혈, 붕루, 소염제, 수렴제, 심기불녕, 심번, 악창, 안질, 암(암 예방/항암/악성종양 예방, 식도암, 유방암, 전립선암, 피부암), 양혈거풍, 임파선염, 종독, 진통, 출혈, 치조농루, 치질, 치뉵, 토혈, 피로곤비, 해열, 행혈.

유사종

능수회화나무 : 가지가 밑으로 처지는 수양형세관회화나무 : 수형이 원통형으로 자람.처진회화나무 : 봉오리를 감싸고 있던 꽃받침이 5개 로 갈라지면 속에 든 꽃잎이 펴진다.

 천연기념물제315호 - ⓐ소재지:인천직할시 서구 신현동 ⓑ면적:1주 656.32㎡ ⓒ지정사유:노거수 ⓓ수령:500년제316호 - ⓐ소재지:부산직할시 사하구 괴정동 ⓑ면적:1주 308㎡ ⓒ지정사유:노거수 ⓓ수령:600년제317호 - ⓐ소재지:충청남도 당진군 송산면 ⓑ면적:1주 294㎡ ⓑ지정사유:노거수 ⓓ수령:700년제318호 - ⓐ소재지:경상북도 경주군 안강읍 ⓑ면적:1주 314㎡ ⓒ지정사유:노거수 ⓓ수령:400년 ⓔ나무높이:17m제319호 - ⓐ소재지: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면적:1주 314㎡ ⓒ지정사유:노거수 ⓓ수령:500년경상남도 함양군 칠북면 영동리에 있는 회화나무는 수령 600여년생으로 수고 30m, 흉고직경 약 6m이다.

 

 

 

*대구종로초등학교

1900년 11월 11일 미국 선교사 아담스(Adams, J. E.)가 당시 제일교회 입구 대문채를 교사로 정하여, 남학교인 대남소학교(大南小學校)를 세웠다.

아담스는 1895년 제일교회와 1898년제중의원(濟衆醫院: 현재의 동산병원)을 설립하여 선교활동을 하던 중, 신교육을 통한 선교를 목적으로 소학교를 세우게 된 것이다. 또한, 아담스와 같이 선교활동을 하던 브루엔(Bruen, H. M., 傅馬太)은 같은 교회 안에 여학교인 신명소학교(信明小學校)를 설립하였다. 1926년 4월 두 학교가 합병되면서 희도보통학교(喜道普通學校)로 교명이 변경되었으며, 1938년 희도심상소학교로, 1941년 4월에 희도국민학교로 다시 변경되었다.

광복 후 1946년 3월에 사립에서 공립으로 바뀌었으며, 1954년 10월 교사를 현재의 위치로 신축 이전하였다. 1955년 3월 대구종로국민학교로 교명이 개칭되었다. 1987년 8월에 36 교실 개축이 완성되었다.

1995년 3월 병설유치원 1학급이 개원되었으며, 1996년 대구종로초등학교로 교명을 변경하게 되었다. 이후 2008년, 2009년 대구광역시교육청 방과 후 시범학교를 운영하였다.

2010년 2월 제103회 졸업식을 거행하였으며, 총 졸업생수는 1만 6,581명이다. 2010년 3월 현재 특수학급 1학급 포함해서 9학급에 재학생 160명, 교직원은 26명이다.

교훈은 ‘꿈과 슬기로 미래를 창조하는 어린이’이고 학교에서 지향하는 어린이상으로는 ‘다르게 생각하고 함께 꿈꾸는 종로 어린이’로서 지역사회와 연계한 전통문화체험교실, 어린이 댄스부, 국악교실, 원어민 영어교실, 우표 취미반 동아리, 만화 애니메이션 동아리 등 다양한 교육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주요활동으로는 교육부지정 자연과 연구학교를 비롯하여, 교육부지정 인구교육 시범학교 등을 운영하였으며, 특히 ‘오빠생각’ 등을 작곡하신 박태준 선생, ‘고향생각’ 등을 작곡하신 현제명 선생이 종로초등학교 졸업생이다.

 



*최제우나무(회화나무)

대구의 중심지에 있는 대구종로초등학교입니다.

초등학교라는 사실 외에도 일제의 경상감영 감옥이라는 가슴 아픈 역사의 흔적이 묻어있는 건물의 터이기도 합니다.

특히 이 곳 종로초등학교가 있는 북성로 일대는 일제 강점기 시설 일본의 신마치가 있던 일본인 밀집 구역으로도 유명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에게 아픈 기억의 순간입니다.

신마치가 출현하기 전, 근세시대에는 농민봉기이자 나라를 바로잡기 위해 봉기된 동학혁명이 슬픈 결말을 맞은 장소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지금 만나볼 최제우 나무는 동학의 교주인 최제우가 혁명에 실패하고 지금의 종로 초등학교가 자리한 곳에 위치해 있던 경상감영 감옥에 수감되었다 참형을 당한 최재우의 안타까움이 남아있는 나무입니다. 

400여년 간 조선의 흥망성쇄를 함께 한 나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에 보시는 건물이 바로 대구 가장 중심부에 위치한 대구종로초등학교입니다.

지금은 초등학교로 국가의 발전을 위해 초석같은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지만, 수 십년 전만해도 일제에 의해 민족을 무참하게 억압하는 감옥이 있던 자리입니다.

이 곳에는 수령이 400년 정도 된 회화나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를 두고 '최제우 나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거대한 이 나무가 왜 최제우 나무로 불리게 되었는지는 위에서 언급했지만 한 번 더 자세한 설명을 푯말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최제우는 경주 출신으로 호는 '수운'입니다.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많은 책을 읽었고, 어지러운 세상을 구제하기 위해 각 처로 떠돌아 다니며 진리를 깨우치기 위해, 노력하다 마침내 전통 민간사상과 유불선의 장점을 융합한 인내천, 즉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평등 사상을 주창하는 민종종교인 동학을 창시했습니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민심을 혼란케 한다는 죄목으로 경상감영감옥(현, 대구종로초등학교)에 구속시켰다가 참형을 결정하여 아미산에서 순도하였습니다.

수령이 400년 정도 된 이 회화나무는 억울하게 희생된 그의 감옥생활을 지켜보았을 것으로 생각되어 '최제우 나무'라고 이름하였습니다.

 

현재는 대구에서 보호수로 관리되고 있습니다.

같은 장소, 다른 시간, 과거 경상감영감옥일 때의 시간을 어떠하였을까요?

지금은 초등학생들이 뛰어노는 즐거움과 유쾌함이 공존하는 장소라면 과거에는 독립투사 및 일제에 항거한 선인들의 울음과 비명이 울려퍼지는 공포와 아픔의 현장이었습니다.

우리는 과거를 절대 잊어서는 안됩니다.

역사 공부가 얼마나 중요하고, 바르게 알아야 하는지 잘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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