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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기자/중구 블로그 기자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 국채보상운동기념관 개관 10주년 특별기획전 : 담배를 끊으면 나라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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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시 중구 국채보상운동기념관에 개관 10주년 특별기획전 '담배를 끊으면 나라가 산다'를 소개합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에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채보상운동기록물이 있습니다.

전시명 : 담배를 끊으면 나라가 산다

전시기간 : 2021년 10월 26일(화) ~ 2022년 2월 27일(일)

장소 : 국채보상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

주차 : 유료

관람시간 : 10:00 ~ 17:00

휴관일 : 매주 월요일, 1월1일, 설,추석명절

 

 

 

1. 구한말 일제에 의해 진 빚을 국민들의 힘으로 갚자며 분연히 일어나 후세에 큰 교훈을 준 국채보상운동의 원동력은 ‘담배를 끊어 그 돈으로 빚을 갚는 것’이었습니다.

 

2.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에서 시작되어 전국을 휩쓴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을 계승 발전 시키고자 건립되었으며 2011년 10월에 개관하였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은 전 국민적 외채갑기 운동으로서 일반평민이 주동이된 한국최초의 시민운동이었으며 부녀자들이 대거 참여한 한국최초의 여성운동이기도 하였으며 전 국민적 기부운동이기도 했습니다.

 

3. 국채보상운동의 전 과정을 알 수 있는 국채운동기록물 2475건이 201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물로 등재되었습니다.

그 생생한 흔적을 전시실과 영상자료실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4. 매년 2월 21일은 국채보상운동(1907년 2월 21일)의 위대한 대구정신을 이어받은 자랑스러운 국채보상운동기념일이자 대구시민의 날입니다.

 

5. 안내실에 들어서면 마스크를 착용한 상태로 화면을 바라보면 자동발열 체크가 됩니다.

코로나19 백신접종 확인은 QR코드나 방명록에 기재하면 됩니다.

 

6. 국채보상운동은 한국 기부문화의 일번지입니다. 

 

7. 국채보상운동기념관 2층 기획전시실에는 개관 10주년 특별기획전 '담배를 끊으면 나라가 산다'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8. '담배를 끊으면 나라가 산다' 전시관 내부입니다.

 

9.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은 대한제국이 일본에서 빌린 돈(차관) 1300만원을 국민이 갚자는 운동이다. 

도로와 학교 등을 지으려 일본에서 관세 수입을 담보로 ‘강제로 빌린’ 차관 1300만원은 당시 대한제국 1년 국가 예산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10. 대구에서 단연동맹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대구에서 담배의 금연운동이 먼저 시작된 이유는 무었일까요?

1907년 당시 대구는 담배의 통상 거래가 매우 활발히 이루어지던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통용되던 담배는 상당수가 일본산이었는데, 대구지역의 민족 자본가들은 금연운동을 시작함으로써 국가가 진 빛을 갚을 수 있는 동시에 일본 수입품의 소비를 억제하고 토종물산을 장려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적극적인 단연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11.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로에 위치한 구 대구 담배제조창(현, 대구예술발전소)과 대구연초제조창 직원 관사(현, 수창청춘맨숀)의 모습입니다. 

 

12. 1907년 일제의 경제침략과 단연동맹이 있었습니다.

국채보상회 사통 및 취지서 입니다.

한 명의 군사도 힘들이지 않고 한 개의 화살도 쏘지 않으면서, 겉으로는 보호한다는 명목을 내걸고 안으로는 실질적으로 빨아들이니 그 방법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산업을 일으킨다는 핑계로 차관을 도입하도록 하고 그 차관이 멋대로 불어나게 하여 결국 온 나라를 몰수하니 이것이 기묘한 방법입니다.

 

13. 국채보상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은 당시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전 국민이 참여한 거국적인 시민 운동이였습니다.

고종황제로부터 백정, 시장의 영세상인, 나무꾼, 걸인, 도적 등 최하층 계층도 참여하여 수많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나눔과 책임의 정신으로 국권을 수호하려고 했던 선조들의 노력을 오늘날의 시대정신으로 승화 발전시켜 나가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계기로 후세에도 영원히 물러 주어야 할 것입니다.

 

14. 1907년 2월 21일 북후정(현, 칠성시장)에서 국채보상금 모금을 위한 대구 군민대회가 있었습니다.

 

15. 국채보상금 모금을 위한 대구 군민대회는

1907년 2월 21일 대구민의소에서 단연회를 설립히고 그날 북후정에서 국채보상금 모금을 위한 대구 군민대회를 개최하였습니다.

여기애서 국채보상운동의 취지서가 낭독되었습니다.

일제 경찰은 대구 군민대회 개최를 방해하고 연설자를 채포하는 등 탄압을 가하였습니다.

 

16. 국채보상 발기대회 김광제 연설문입니다.

우리 한미족 2천만 동포가 매일 소비하는 것 중 가장 사소하고 소비하지 않아도 무방한 재화가 하나 있습니다.

사람마다 피우는 담배입니다.

궐련과 잎담배로 손익을 맞추어 대강 계산하면 사람마다 매일 소비하는 돈이 삼전으로 쳐서 2,000만명이 매일 소비하는 것을 석달 90일로 계산하여보십시오 서너달 담배를 피우지 아니한다고 사람이 죽을 지경에 이를 리는 없지만, 이 빛을 갚지 아니한다면 나라나 백성이 어떤 지경에 이르겠습니까?

오늘부터 담배를 끊고 국채를 갚기로 일치 결정하여 전국에 경고합시다. 

 

17. 구한말의 담배풍물 중 담박고 타령이 있습니다.

담박고야 담박고야 동래나 건너 담박고야

너의 나라 어디인데 우리 대한에 나왔느냐

금을 주러 나왔느냐 은을 주러 나왔느냐

금과 은을 주기는커녕 보는것마다 다 빼앗아가네 

 

18. 당시 국제신문 담배광고입니다.

 

19. 한국의 담뱃대입니다.

담뱃대는 담배를 피우는데 쓰이는 도구로서 한국의 옛 문헌에서는 연죽, 연관, 연배, 등으로 기록하고 이있는데, 그중에서 연죽이 일반적으로 쓰였습니다.

 

20. 끽연사우 입니다.

전통적으로 담배를 피우는데 필요한 도구는 네가지가 있습니다.

밤뱃대와 재털이, 그리고 부싯돌과 쌈지를 문방사우에 빗대어 끽연 사우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21. 조선시대의 담배이야기 입니다.

담배는 임진왜란 이후 일본으로부터 수입된 박래품입니다.

담배라는 용어는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말을 포르투갈 사람들이 타바코라도 적었고, 이후 일본으로 수입되면서 타바코를 음이 비슷한 담박고로 적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처음에는 일본음과 비슷한 담바귀 또는 담파고라고 불렀다가 차츰 담배로 굳어 졌습니다.

이수광의 지붕유설, 인조대왕실록, 하멜 표류기, 이옥의 연검, 호랑이 민화, 신윤복의 쌍검대무, 김홍도의 단원풍속도첩 등에 담배가 나옵니다.

 

※네이버지도에 국채보상운동기념관 표시해주세요.

 

 

*유튜브 동영상 링크 바로가기 : 화면 좌측 하단 다음에서보기 눌러주세요!

https://youtu.be/gmdYjzIZiz4

 

 

 

*국채보상운동기념관

국채보상운동기념관은 대구에서 시작되어 전국을 휩쓴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을 계승 발전 시키고자 건립되었으며 2011년 10월에 개관하였습니다.

이 운동은 전 국민적 외채갑기 운동으로서 일반평민이 주동이된 한국최초의 시민운동이었으며 부녀자들이 대거 참여한 한국최초의 여성운동이기도 하였으며 전 국민적 기부운동이기도 했습니다.

이 운동의 전 과정을 알 수 있는 국채운동기록물 2475건이 2017년 10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물로 등재되었습니다.

그 생생한 흔적을 전시실과 영상자료실에서 엿볼 수 있습니다.

매년 2월 21일은 국채보상운동(1907년 2월 21일)의 위대한 대구정신을 이어받은 자랑스러운 국채보상운동기념일이자 대구시민의 날입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 개관 10주년 특별기획전 담배를 끊으면 나라가 산다.

구한말 일제에 의해 진 빚을 국민들의 힘으로 갚자며 분연히 일어나 후세에 큰 교훈을 준 국채보상운동의 원동력은 ‘담배를 끊어 그 돈으로 빚을 갚는 것’이었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의 기폭제가 된 담배가 한국에 상륙한뒤 어떤 존재가 됐는지를 알 수 있는 전시회가 국채보상운동의 발상지 대구에서 열립니다.

사단법인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는 개관 10주년을 맞아 국채보상운동의 의미를 재조명하기 위해 특별기획전 ‘담배를 끊으면 나라가 산다展(전)’을 2021년 10월26일부터 2022년 2월27일까지 대구 중구 국채보상로 국채보상운동기념관에서 열립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된 1907년을 전후한 시기의 담배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자료들이 전시됩니다.

이를 통해 담배가 조선을 관통해 구한말, 대한제국 시대까지 생활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전시물에 따르면 담배는 조선시대 임진왜란 이후 국내에 들여온 것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이후 조선에서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널리 대중화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문헌에서 가장 오래 담배에 관한 언급은 1614년 이수광이 펴낸 ‘지봉유설’에 등장합니다.

담배에 대한 명칭도 처음에는 일본으로 수입되면서 타바코’를 일본의 음과 비슷한 ‘담바귀’ 또는 ‘담파고’라고 했다가 ‘담배’로 굳어졌다고 합니다.

1653년 네덜란드인 하멜이 일본으로 가려다 태풍을 만나 난파돼 조선에 13년 동안 체류하면서 쓴 ‘하멜표류기’에는 “이 나라에서는 담배를 많이 피우는데 여자들은 물론 네댓 살 되는 아이들도 담배를 피운다”고 서술해 조선시대 담배가 널리 퍼져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다 일제에 의해 진 빚 1300만원을 갚자는 국채보상운동이 1907년 대구에서 횃불을 들어올립니다.

빚을 갚는 가장 빠른 방법은 ‘담배를 끊는 것’이었습니다. 담배를 끊자는 단연(斷煙)동맹이 시작됐고, 국채보상운동은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대구에서 단연운동을 통해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된 것은 대구가 1907년 당시 담배의 통상 거래가 활발히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이번 전시회는 일목요연하게 보여줍니다.

 

 

 

*조선시대의 담배이야기

담배는 일본에서 수입된 박래품 입니다.

담배는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서 수입된 박래품(舶來品)입니다. 1614년 이수광이 쓴 『지봉유설』에 따르면 임진왜란 당시 일본 군인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을 보고, 우리나라에서도 하나둘씩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당시엔 담배로 부르지 않았습니다. 담바귀 또는 담파고라고 했습니다. 타바코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담배는 조선시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최고의 '기호품'이었습니다. 1810년 이옥의『연경』이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담배 백과사전이 등장했을 정도입니다. 1653년 네덜란드인 하멜이 조선에 13년 동안 체류하면서 쓴 『하멜표류기』에는 '이 나라에서는 담배를 자주 피우는데 여자들은 물론 네댓 살 되는 아이들도 담배를 피운다'라고도 쓰여 있습니다.

이렇게 남녀노소가 즐기던 담배. 하지만 이 담배가 추후 나랏빚을 갚는 애국 운동의 원동력이 됐던 사실은 모르는 이들이 많습니다.

 

 

 

"일본에서 빌린돈 1300만원 갚자"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은 대한제국이 일본에서 빌린 돈(차관) 1300만원을 국민이 갚자는 운동이다. 도로와 학교 등을 지으려 일본에서 관세 수입을 담보로 ‘강제로 빌린’ 차관 1300만원은 당시 대한제국 1년 국가 예산과 맞먹는 수준이었다.

국채보상운동을 이끈 신지식인들은 당시 흡연자가 워낙 많다 보니, 일본에 진 빚을 갚는 가장 빠른 방법이 '담배 끊기'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게 금연, 즉 담배를 끊어 빚을 갚자는 운동인 '단연(斷煙) 동맹'의 배경입니다.

국채보상운동기념사업회 측은 "담배와 관련한 국채보상운동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이를 널리 알리기 위해 특별기획전 ‘담배를 끊으면 나라가 산다展(전)’을 2021년 10월26일부터 2022년 2월27일까지 대구 국채보상로 국채보상운동기념관에서 엽니다.

전시회는 조선시대와 대한제국 시기의 담배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다양한 자료를 소개합니다. 연초의 재배, 담배의 전래 및 제조공정, 담배 소비현황 등을 보여줍니다. 국민의 당시 흡연에 대한 인식, 호랑이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 같은 조선시대 담배와 관련한 민화 등도 선보입니다.『하멜표류기』에 나온 담배 이야기도 리플릿으로 전시합니다.

201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국채보상운동은 전국적인 애국 운동입니다. 주민들은 누구 하나 시킨 적이 없지만, 집에 있던 은가락지를 들고나오고, 패물로 집에 꼭꼭 숨겨둔 금붙이를 가져 나와 빚 갚기에 써달라면서 내놨습니다.

일본의 경제 예속을 막기 위해 고종부터 관료, 민족자본가와 지식인, 부녀자까지 전 국민의 25%가 패물을 꺼내고, 담배까지 끊어가며 참여했지만 아쉽게도 일본의 계략으로 빚 청산은 실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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