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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만에 중창 일연 스님이 35년을 머물며 삼국유사 집필을 구상한 비슬산 대견사 옛 모습 그대로 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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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만에 중창 일연 스님이 35년을 머물며 삼국유사 집필을 구상한 곳 1천200년 전 신라 현덕왕 때 창건된 비슬산 대견사 옛 모습 그대로 환생....

◈대견사는 해발 1,000m의 산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는 한국 4대 사찰 중 하나다.

 

 

1.비슬산 대견사 전경:

日 강제폐사 100년만에 천년고찰 重創 개산대재 ‘대견보궁’ 현판 내걸어, 민족유산·氣회복 의미....

천년 고찰 비슬산 대견사가 강제폐사 100년 만에 다시 문을 열어 대견보궁(大見寶宮) 현판을 내걸고 그 위용을 드러냈다.

 

2.비슬산 대견사:

 대구시 달성군 유가면 비슬산 정상에 우뚝 선, 하늘의 정기와 땅의 기운이 맞닿은 절, 대견사.
봄을 부르는 꽃비가 촉촉이 내리고, 운무가 산자락을 휘감아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도는 가운데 3·1절인 지난 2014.3.1일 오후 1시부터 대견사 중창을 기리는 개산대재(開山大齋)가 거행됐다.

지난해 3월1일 기공식과 9월 상량식에 이어 이번 중창 개산대재까지 세 차례 모두 비를 내리는 진기록을 남겨 하늘마져 울었다.

 

3.비슬산 대견사:

 행사가 거행되는 동안 부처님 진신사리를 참배하기 위한 방문객의 발길도 끊이지 않았다. 폐사지의 절이 중창·복원된 것은 전국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개식을 알리는 법고 소리가 울려퍼지고, 불교신도들이 합장한 가운데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의 반야심경 낭독을 시작으로 중창식이 시작됐다.

 

4.대견사 대웅전:

 팔공총림 동화사 성문 주지스님은 봉행사에서 “오랜 역사와 수많은 전설과 신화를 가진 대견사는 민족역사의 굴곡 속에서 부침을 거듭해 온 사찰이다. 이번 3·1절을 맞아 개산대재를 거행함은 일제에 의해 강제 폐사된 민족문화 유산을 재현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의미가 크다”며 “대견은 크게 보라는 뜻이다. 대견사 중창을 계기로 국민 전체가 크게 보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5.대견사 대웅전 내부:

삼국유사의 일연 스님이 22년 동안 주석(駐錫·승려가 머무름)하고, 100여년 전 일본에 의해 강제 폐사됐던 대구 달성군의 비슬산 대견사가 중창돼 오는 3월1일 개산식을 갖는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 팔공총림 동화사(주지 성문 스님)와 달성군은 1천200년 전 신라 헌덕왕 때 창건된 달성군 유가면 용리 비슬산 대견사의 중창사업을 3년6개월여 만에 마치고 2014.3.1일 비슬산 현장에서 `대견사 중창 개산대재` 행사를 했다.

 

6.대견사 산신각 네부:

비슬산 대견사는 1917년 “일본의 기를 꺾는다”는 속설에 따라 일제에 의해 강제 폐사, 우리민족의 비운과 함께했다. 
이에 달성군과 팔공총림 동화사는 민족정기 회복과 달성의 역사성을 되찾기 위해 중창을 계획, 지난 2011년 공사에 착수해 최근 완공했다. 
대견사 본사인 동화사는 50억원을 들여 전체 사찰부지 3천633㎡에 대웅전(73㎡)을 비롯해 대견보궁·선당·산신각·종무소·요사채 등의 건물을 폐사 당시의 원형대로 최대한 복원했으며, 앞으로 20억원을 들여 일주문과 종루를 설치할 계획이다.

 

7.대견사 마애불 안내판:

대견사는 신라 헌덕왕 때인 810년 창건됐으나 임진왜란 때 전소된 뒤 조선 광해군과 인조 대에 중창됐으며, 1900년 영친왕 즉위와 대한제국 축원을 위해 중수된 뒤 동화사 말사로 편제됐다가 1917년 일제에 의해 강제 폐사된 후 지금까지 복원되지 못했다.

 

8.대견사 동굴:

대견사는 신라 헌덕왕 때인 810년 창건됐으나 임진왜란 때 전소된 뒤 조선 광해군과 인조 대에 중창됐으며, 1900년 영친왕 즉위와 대한제국 축원을 위해 중수된 뒤 동화사 말사로 편제됐다가 1917년 일제에 의해 강제 폐사된 후 지금까지 복원되지 못했다.

 

9.대견사 암괴류:

고려 보각국사 일연 스님이 22세이던 1227년(고려 고종 4년) 승과 선불장에 장원 급제한 뒤 초대 주지로 부임해 22년 동안 지냈으며 이곳에서 삼국유사 집필을 구상한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 대견사 터에는 신라시대에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길이 30m, 높이 6m의 축대가 남아 있고 무너진 9층 석탑(현재는 3층)과 거대한 선각 불상, 10여명이 앉을 수 있는 동굴대좌 등이 있다.

 

10.대견사 해후소:

김문오 달성군수는 환영사에서 “달성군 개청 100주년과 새로운 100년이 시작되는 시점에 일제에 의해 강제 폐사된 대견사가 새롭게 태어나 감개무량하다”며 “비슬산 영산의 기운과 대견사의 정기를 이어받아 우리나라와 대구가 더욱 융성, 번영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대견사는 신라 헌덕왕 때 보당암으로 창건된 사찰로 1227년(고려 고종 4년) 초임 주지로 부임한 일연스님이 삼국유사 집필을 구상한 곳으로 유명하다.

 

11.대견사 동굴 서쪽 입구:

새롭게 태어난 대견사는 일연 스님이 출가 후 70년 불자 기간 중 35년을 비슬산과 달성군에 주석(駐錫)하면서, 삼국유사 집필의 근간을 구상한 역사성을 지닌 곳이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는 적멸보궁, 선당, 산신각, 요사채를 포함한 4개동의 연면적 186㎡ 규모다. 국보급 적멸보궁 사찰로 등록됐다. 달성군이 부지를 제공하고, 동화사에서 50억원을 지원해 중창됐으며, 앞으로 수익금 중 30%는 달성군에 귀속된다.
달성군은 비슬산의 천연기념물인 암괴류와 해발 1천m 고지 천혜의 자연경관, 비슬산 참꽃문화제와 연계돼 연간 3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명품 불교문화 관광지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과 성문 동화사 큰스님, 김범일 대구시장, 이종진 국회의원(달성군), 배사돌 달성군의회 의장, 불교신자, 시민 등 2천여명이 참석해 대견사 개산을 축하했다.

 

12.대견사 동굴 내부:

 

13.대견사 동굴 동쪽 입구:

 

14.달성 비슬산 암괴류 안내판

 

15.대견사 삼층석탑 안내판

 

16.대견사 삼층석탑

 

17.대견사

 

18.대견사

 

19.대견사 인증샷

 

20.대견사

 

21.대견사

 

22.대견사 3층석탑

 

23.대견사

 

24.비슬산 대견사

 

25.비슬산 대견사

 

26.비슬산 조화봉 참꽃

 

27.비슬산 대견사

 

29.비슬산

 

29.비슬산 천왕봉

 

30.비슬산

 

 

*일연 스님 머문 비슬산 대견사 옛 모습 그대로 환생

2014.3.3.개산대재(開山大齋)

日 강제폐사 100년만에 천년고찰 重創 개산대재 ‘대견보궁’ 현판 내걸어, 민족유산·氣회복 의미.

‘천년 고찰’ 비슬산 대견사가 강제폐사 100년 만에 다시 문을 열어‘대견보궁(大見寶宮)’ 현판을 내걸고 그 위용을 드러냈다.
대구시 달성군 유가면 비슬산 정상에 우뚝 선, 하늘의 정기와 땅의 기운이 맞닿은 절, 대견사.
봄을 부르는 꽃비가 촉촉이 내리고, 운무가 산자락을 휘감아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도는 가운데 3·1절인 지난 2014.3.1일 오후 1시부터 대견사 중창을 기리는 개산대재(開山大齋)가 거행됐다.

지난해 3월1일 기공식과 9월 상량식에 이어 이번 중창 개산대재까지 세 차례 모두 비를 내리는 진기록을 남겨 하늘마져 울었다.

행사가 거행되는 동안 부처님 진신사리를 참배하기 위한 방문객의 발길도 끊이지 않았다. 폐사지의 절이 중창·복원된 것은 전국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개식을 알리는 법고 소리가 울려퍼지고, 불교신도들이 합장한 가운데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의 반야심경 낭독을 시작으로 중창식이 시작됐다.
팔공총림 동화사 성문 주지스님은 봉행사에서 “오랜 역사와 수많은 전설과 신화를 가진 대견사는 민족역사의 굴곡 속에서 부침을 거듭해 온 사찰이다. 이번 3·1절을 맞아 개산대재를 거행함은 일제에 의해 강제 폐사된 민족문화 유산을 재현하고,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의미가 크다”며 “대견은 크게 보라는 뜻이다. 대견사 중창을 계기로 국민 전체가 크게 보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삼국유사의 일연 스님이 22년 동안 주석(駐錫·승려가 머무름)하고, 100여년 전 일본에 의해 강제 폐사됐던 대구 달성군의 비슬산 대견사가 중창돼 오는 3월1일 개산식을 갖는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 팔공총림 동화사(주지 성문 스님)와 달성군은 1천200년 전 신라 헌덕왕 때 창건된 달성군 유가면 용리 비슬산 대견사의 중창사업을 3년6개월여 만에 마치고 2014.3.1일 비슬산 현장에서 `대견사 중창 개산대재` 행사를 했다.
비슬산 대견사는 1917년 “일본의 기를 꺾는다”는 속설에 따라 일제에 의해 강제 폐사, 우리민족의 비운과 함께했다. 
이에 달성군과 팔공총림 동화사는 민족정기 회복과 달성의 역사성을 되찾기 위해 중창을 계획, 지난 2011년 공사에 착수해 최근 완공했다. 
대견사 본사인 동화사는 50억원을 들여 전체 사찰부지 3천633㎡에 대웅전(73㎡)을 비롯해 대견보궁·선당·산신각·종무소·요사채 등의 건물을 폐사 당시의 원형대로 최대한 복원했으며, 앞으로 20억원을 들여 일주문과 종루를 설치할 계획이다.  
대견사는 신라 헌덕왕 때인 810년 창건됐으나 임진왜란 때 전소된 뒤 조선 광해군과 인조 대에 중창됐으며, 1900년 영친왕 즉위와 대한제국 축원을 위해 중수된 뒤 동화사 말사로 편제됐다가 1917년 일제에 의해 강제 폐사된 후 지금까지 복원되지 못했다.

고려 보각국사 일연 스님이 22세이던 1227년(고려 고종 4년) 승과 선불장에 장원 급제한 뒤 초대 주지로 부임해 22년 동안 지냈으며 이곳에서 삼국유사 집필을 구상한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 대견사 터에는 신라시대에 축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길이 30m, 높이 6m의 축대가 남아 있고 무너진 9층 석탑(현재는 3층)과 거대한 선각 불상, 10여명이 앉을 수 있는 동굴대좌 등이 있다.

 

김문오 달성군수는 환영사에서 “달성군 개청 100주년과 새로운 100년이 시작되는 시점에 일제에 의해 강제 폐사된 대견사가 새롭게 태어나 감개무량하다”며 “비슬산 영산의 기운과 대견사의 정기를 이어받아 우리나라와 대구가 더욱 융성, 번영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대견사는 신라 헌덕왕 때 보당암으로 창건된 사찰로 1227년(고려 고종 4년) 초임 주지로 부임한 일연스님이 삼국유사 집필을 구상한 곳으로 유명하다.

 

새롭게 태어난 대견사는 일연 스님이 출가 후 70년 불자 기간 중 35년을 비슬산과 달성군에 주석(駐錫)하면서, 삼국유사 집필의 근간을 구상한 역사성을 지닌 곳이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시는 적멸보궁, 선당, 산신각, 요사채를 포함한 4개동의 연면적 186㎡ 규모다. 국보급 적멸보궁 사찰로 등록됐다. 달성군이 부지를 제공하고, 동화사에서 50억원을 지원해 중창됐으며, 앞으로 수익금 중 30%는 달성군에 귀속된다.
달성군은 비슬산의 천연기념물인 암괴류와 해발 1천m 고지 천혜의 자연경관, 비슬산 참꽃문화제와 연계돼 연간 3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명품 불교문화 관광지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날 행사에는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과 성문 동화사 큰스님, 김범일 대구시장, 이종진 국회의원(달성군), 배사돌 달성군의회 의장, 불교신자, 시민 등 2천여명이 참석해 대견사 개산을 축하했다.

 

 

*전설의 비슬산 대견사 복원 된다

2002.11.13.시굴조사

전설로만 전해지던 대구 달성군 용리 비슬산 정상부근의 대견사의 실체가 확인, 대견사지에 대한 복원사업이 본격적으로 전개될 전망이다.
달성군은 특히 대견사지를 복원, 비슬산을 비롯한 인근 유가사, 소재사, 용연사 등과 연계해 관광자원화 및 역사교육장으로 활용한다는 방침이다.
군관계자는 “시굴조사를 통해 대견사의 실체가 확인됐고, 특히 유가심인의 정신을 읽을 수 있는 밀교문양이 새겨진 마애불이 발경돼 문화재 가치가 더욱 높다”고 말했다.
밀교문양의 경우 전국에서 4번째로 발견된 매우 희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진각종의 유가심인이라는 정신을 담고 있다는 것이 보다 큰 의미를 주고있다.
이는 특히 달성군 유가면을 비롯 유가사 등 주변 지명과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돼 이 지역 불교문화의 본류를 확인할 수 있는 사료가 될 전망이다.
군은 오는 12월 문화재청에 사적신청을 하고, 내년 3월께 결정이 내려지면 이 지역에 대한 복원사업이 본격화할 방침이다.
대견사지에 대한 시굴조사는 영남문화재연구원(원장 이백규)이 맡아 지난 9월23일부터 11월1일까지 40일간 이뤄졌다.
조사 위치는 비슬산 매표소에서 최근 개설된 임도를 따라 대견봉으로 약 2km정도 올라가면 해발 1,000m 정상 부근.
깍아지는 듯한 절벽 사이에 길이 40m, 높이 6m의 거대한 축대를 쌓아 평단한 대지가 조성돼 있는데 이곳이 대견사지다.
당초 달성군은 문화재 발굴을 위한 몇주간의 시굴조사만을 계획했었다.
그러나 시굴조사 과정에서 대견사의 실체 확인을 비롯한 ‘마애불’ 등 문화재적인 가치가 큰 유적이 발견돼 조사기간이 40일로 늘어났다.
이번 조사보고서에 따르면 비슬산 정상부에 위치한 대견사지에서 대견사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는 ‘명문 암막새’를 발견, 시굴했다.
이 암막새에는 ‘대견사’를 비롯 ‘만력’과 ‘숭정’이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고, 이는 광해군 3년(서기 1611년 4월)과 인조11년(1633년 5월)이라는 대견사의 중창불사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다.
조사대상지역 내에서는 석탑과 우물, 배례석, 암굴, 마애불 등 절터가 있었다는 갖가지 유구의 흔적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대견사지에서 가장 큰 규모로 보이는 건물에서는 146x146cm크기의 연화대좌가 놓여있고, 이곳은 불상을 안치하기 위한 시설로 판단된다.
유적의 가장 서편에 위치한 건물지는 전면에 아궁이 시설이, 내부에는 온돌시설이, 건물배후에는 별도의 배수시설이 설치돼 있었다.
이곳에서 시굴된 유적중 마애불은 암굴의 남쪽입구 우측 바위에 음각으로 세겨져 있는데 음각의 문양은 하부에 연화대좌가 새겨져 있다.
특히 암각은 남원 숭련사 뒷산에서 발견된 밀교 문양인 유가심인과 거의 동일하다. 승련사의 유가심인은 그 옆에 ‘옴마니반매훔’의 글귀가 세겨져 있다. 그러나 대견사지의 암각은 하단부가 인위적으로 훼손, 유실되었는데 유실된 부분에 그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된다.
밀교문양의 존재는 이 주변의 유가면과 유가사 등 지명과의 관련성 등으로 비슬산 일대의 밀교와의 연관성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까지 대견사의 창건에 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다만 당나라 황제가 절을 지을 곳을 찾던 중 세수물을 떠 놓은 대야에 아름다운 경관이 나타다는 것. 황제는 대야에 나타난 곳을 찾아 절을 지었으며 대국에서 보였던 절터라하여 ‘대견사’라 했다는 전설이 전해져왔다.
그러나 태종 16년(1416년 2월29일)과 세종5년(1423년 11월29일)에 대견사 장육관음석상이 땀을 흘렸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절의 폐사시기 역시 명확하지 않다. 다만 광무4년(1900년) 명친왕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이재인이 중창했다는 것과 융희 2년(1908년)께 허물어지기 시작, 1909년에 폐사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번 시굴조사의 책임조사원인 영남문화재연구원 박승규실장은 “구전으로만 전해지던 대견사지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어 보람되고, 앞으로 보다 구체적인 발굴 조사가 이뤄져 대견사지의 정비 및 복원이 본격화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달성군은 이번에 확인된 대견사지를 비롯, 대구 유일의 아치형 석교인 ‘척진교’, 도동서원의 ‘관수정’, ‘성산고분’과 ‘양동고분’, 포산사 ‘현풍곽씨 서당’, 유형문화재인 하목적의 국보 승격, ‘양동 산성’ 등 관내 10곳을 사적으로 지정해 줄 것을 문화재청에 신청 했다.

 

  

 

*웃자퀴즈 263 : 드라큐라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은?

*힌트:인터넷에 검색하면 정답이 있습니다. ㅎㅎㅎㅎ 매주 월요일 정답 공개 합니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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