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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여행

[전남 함평여행] 강동산악회에서 9월정기산행은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말사 용이 승천하였다는 전설의 천년고찰 함평 용천사 탐방(4) - 신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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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9.24. 강동산악회 9월정기산행은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84호 1000년 고찰 전남 함평군에있는 영광 용천사를 탐방하고 왔습니다.

모악산 용천사(대한불교 조계종)는 전남 함평군 해보면 광암리 415번지 소재한 절이다.

♣소재지: 전라남도 함평군 해보면 용천사길 209.

☎전화: 061-322-1822. 322-1846 번,

 

 

1.용천사 대웅보전:

용이 승천하였다는 함평 용천사는 전남 함평군 광암리에 위치해 있으며 대웅보전 돌계단의 오른쪽의 샘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용이 살다가 승천하여 용천으로 불렀다는 전설이 있다합니다.


2.용천사 안내석:

용천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의 말사이다. 600년(백제 무왕 1) 행은(幸恩)이 창건하였다. 절 이름은 대웅전 층계 아래에 있는 용천(龍泉)이라는 샘에서 유래한다. 이 샘은 황해로 통하며 용이 살다가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645년(의자왕 5) 각진(覺眞)이 중수하고, 1275년(고려 충렬왕 1) 국사 각적(覺積)이 중수하였다.


3.용천사 입구: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세조와 명종 때 중수하여 큰 절로 성장하였다. 《용천사대웅전현판단청기》에 따르면 전성기에는 3천여 명의 승려가 머물렀다고 한다. 1597년(조선 선조 30) 정유재란 때 불에 탄 것을 1600년(선조 33) 중창하였고, 1632년(인조 10)에는 법당을 새로 지었다.


4.용천사:

1638년(인조 16)과 1705년(숙종 31)에 중건하고, 1938년에 중수했으나 1950년 6·25전쟁 때 모두 불에 타 없어졌다. 1964년에 금당이 옛 보광전(普光殿)자리에 대웅전을 새로 세우고, 요사채도 지어 절의 면모를 바꾸었다. 1996년에 대웅전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5.용천사 연혁:

용천사의 건물로는 대웅전과 범종각·웅진당·요사채 등이 있고 유물로는 용천사석등과 해시계 등이 전한다. 이 중 1981년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84호로 지정된 석등은 높이 2.38m로 1685년(숙종 11)에 제작된 것이다. 짜임새가 투박하지만 하대석에 거북이 조각되어 있다.


6.용천사 사천왕상:

해시계는 석등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6·25전쟁 때 잃어버렸다가 1980년 경내 흙더미 속에서 발굴된 것이다. 본래는 높이 14cm, 가로 세로 각 39cm의 정사각형이었으나 지금은 절반이 떨어져나간 상태이다. 하지만 낮시간에 해당되는 묘시(卯時)부터 유시(酉時)까지는 남아 있어 사용하는 데는 이상이 없다고 한다. 그밖에 대웅전에는 18세기 때 조성된 후불탱화가 있었으나 2000년 5월에 도난당하였다.


7.용천사 사천왕상:

함평을 방문한다면 꼭 가봐야 할 곳은 바로 용천사다. 이곳에는 꽃무릇의 화려함과 천년고찰의 차분함이 공존하고 있다.

모악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용천사는 백제 무왕시대인 600년에 창건된 사찰이다. 자그마치 1400의 세월을 보낸 역사적인 사찰이다. 이곳은 절의 이름만 들어도 용과 관련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용천사 대웅전 아래에는 용천이라는 샘이 있었다. 이 샘은 서해바다로 통하고 있으며 용이 살다가 하늘로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래서 이 절은 용천사라는 이름이 붙었다.



8.용천사 상사루:

용은 우리나라에서 신성한 영물로 생각하는 동물이다. 이러한 용이 들어간 이름이 어쩐지 강한 느낌을 준다. 용천사는 백제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치며 많은 중수를 거쳤다. 그 덕분에 전라도 지역을 대표할 만한 큰 사찰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한 역사서에 따르면 한때 이곳에 머물던 스님의 수가 3천여 명을 넘기도 했다고 하니 그 당시에 용천사의 위용을 상상으로나마 가늠할 수 있다.


9.용천사 지상전:

용천사를 가는 길에는 함평이 자랑하는 꽃무릇 공원이 있다. 이곳은 한국의 자연 100경에 꼽힐 정도로 아름답고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우리나라에 피어있는 꽃무릇 중에 가장 화려한 자태를 가지고 있는 꽃무릇 공원은 용천사 입구에서부터 용천사까지 가는 동안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빼앗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꽃과 꽃 사이를 유유히 날아다니는 산제비나비와 붉게 물든 잎이 활짝 피어 있는 꽃무릇의 풍경은 이곳을 더욱 매력적인 곳으로 보이게 한다. 꽃무릇 공원 중앙에 있는 넓은 호수는 주변을 둘러싼 꽃무릇과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더한다.


10.용천사 상사루 내부:

용천사 안쪽에도 피어있는 꽃무릇은 용천사를 방문한 사람들에게 환한 미소를 보이고 있다. 용천사의 풍경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꽃무릇 사이에 자리 잡은 여러 가지의 불상이다. 아름다움 사이에서도 돋보이는 돌부처의 합장은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고요하고 평안하게 만들어 주는 힘이 있다. 이런 특별한 광경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용천사를 찾고 있기도 하다.

11.용천사 대웅보전


12.용천사 웅진당


13.용천사 수각 보수 시쥬자 석


14.용천사 수각


15.용천사 용천


16.용천사 대웅보전 내부


17.용천사 산신각


18.용천사 천불전


19.용천사 천불전


20.용천사 천불전 내부


21.용천사 산신각

 

22.용천사 산신각 내부


23.용천사 전경


24.용천사 범종각


25.용천사 범종


26.용천사 요사채

  

27.용천사 전경


28.용천사 웅진당 내부


29.용천사 화장실


30.용천사 전경



*함평 용천사

위치: 전라남도 함평군 해보면 용천사길 209.

전화: 061-322-1822, 322-1846 번,

모악산 용천사(대한불교 조계종)는 전남 함평군 해보면 광암리 415번지 소재.

* 용이 승천하였다는 전설이 있는 곳, 용천사(함평) *

용이 승천하였다는 함평 용천사는 전남 함평군 광암리에 위치해 있으며 대웅보전 돌계단의 오른쪽의 샘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용이 살다가 승천하여 용천으로 불렀다는 전설이 있다합니다.

용천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의 말사이다. 600년(백제 무왕 1) 행은(幸恩)이 창건하였다. 절 이름은 대웅전 층계 아래에 있는 용천(龍泉)이라는 샘에서 유래한다. 이 샘은 황해로 통하며 용이 살다가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한다. 645년(의자왕 5) 각진(覺眞)이 중수하고, 1275년(고려 충렬왕 1) 국사 각적(覺積)이 중수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세조와 명종 때 중수하여 큰 절로 성장하였다. 《용천사대웅전현판단청기》에 따르면 전성기에는 3천여 명의 승려가 머물렀다고 한다. 1597년(조선 선조 30) 정유재란 때 불에 탄 것을 1600년(선조 33) 중창하였고, 1632년(인조 10)에는 법당을 새로 지었다. 1638년(인조 16)과 1705년(숙종 31)에 중건하고, 1938년에 중수했으나 1950년 6·25전쟁 때 모두 불에 타 없어졌다. 1964년에 금당이 옛 보광전(普光殿)자리에 대웅전을 새로 세우고, 요사채도 지어 절의 면모를 바꾸었다. 1996년에 대웅전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 용천사의 건물과 볼거리 *
용천사의 건물로는 대웅전과 범종각·웅진당·요사채 등이 있고 유물로는 용천사석등과 해시계 등이 전한다. 이 중 1981년 전라남도유형문화재 제84호로 지정된 석등은 높이 2.38m로 1685년(숙종 11)에 제작된 것이다. 짜임새가 투박하지만 하대석에 거북이 조각되어 있다. 해시계는 석등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6·25전쟁 때 잃어버렸다가 1980년 경내 흙더미 속에서 발굴된 것이다. 본래는 높이 14cm, 가로 세로 각 39cm의 정사각형이었으나 지금은 절반이 떨어져나간 상태이다. 하지만 낮시간에 해당되는 묘시(卯時)부터 유시(酉時)까지는 남아 있어 사용하는 데는 이상이 없다고 한다. 그밖에 대웅전에는 18세기 때 조성된 후불탱화가 있었으나 2000년 5월에 도난당하였다.

*용천사석등

문화제지정:  전라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84호.

전라남도 함평군 해보면 광암리용천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석등.

 높이 2.38m.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84호. 장방형 지대석에 하대석을 놓고 그 상단에 복련(覆蓮)을 하였으며 간석받침 상단 네 모서리에는 거북이 양각되어 있다.

간석은 8각으로 전면에 명문이 음각되어 있는데, ‘康熙二十四年乙丑六月日(강희24년을축6월일)’이라 기록되어 있어 이 석등의 조성연대가 1685년(숙종 11)임을 알 수 있다.

8각상대석은 앙련(仰蓮)이 조식되어 있고, 화사석(火舍石 : 석등의 점등하는 부분)은 원형투창(圓形透窓)으로 그 주위에는 음각당초문을 새겨 놓았다.

옥개석(屋蓋石)은 팔작지붕형으로 방형이다. 이 석등은 간주석까지는 전형양식인 팔각형식이나, 화사석과 옥개석에서 4각방형 및 팔작지붕형으로 변형되어 조선시대 석조미술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함평을 방문한다면 꼭 가봐야 할 곳은 바로 용천사다. 이곳에는 꽃무릇의 화려함과 천년고찰의 차분함이 공존하고 있다.

모악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용천사는 백제 무왕시대인 600년에 창건된 사찰이다. 자그마치 1400의 세월을 보낸 역사적인 사찰이다. 이곳은 절의 이름만 들어도 용과 관련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용천사 대웅전 아래에는 용천이라는 샘이 있었다. 이 샘은 서해바다로 통하고 있으며 용이 살다가 하늘로 승천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래서 이 절은 용천사라는 이름이 붙었다.
용은 우리나라에서 신성한 영물로 생각하는 동물이다. 이러한 용이 들어간 이름이 어쩐지 강한 느낌을 준다. 용천사는 백제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를 거치며 많은 중수를 거쳤다. 그 덕분에 전라도 지역을 대표할 만한 큰 사찰로 성장할 수 있었다. 한 역사서에 따르면 한때 이곳에 머물던 스님의 수가 3천여 명을 넘기도 했다고 하니 그 당시에 용천사의 위용을 상상으로나마 가늠할 수 있다.

용천사는 유구한 역사를 지닌 사찰다운 많은 유물들이 있었다. 하지만 6.25 전쟁 당시 사찰이 소실되었고 용천사의 역사를 볼 수 있는 귀중한 보물들이 손상되고 분실되었다. 지금 용천사를 대표할 만한 유물은 용천사 석등과 해시계를 꼽을 수 있다. 용천사 석등은 용천사 삼층석탑 옆에 자리 잡고 있으며 현재 전남유형문화제 제84호에 지정되어 있다. 조선 숙종시대인 1685년에 제작된 이 석등은 투박하게 조형된 뭉툭한 느낌을 풍기고 있으나 조선시대의 4각 석등의 모습을 잘 표현하고 있는 뛰어난 작품이다. 높이는 2.3m로 많이 크지 않고 비석의 하단부에는 용천사 석등을 대표하는 거북이의 형상이 조각되어 있다.
용천사 해시계는 용천사 석등이 만들어졌던 1600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해시계가 만들어졌을 때 가로와 세로가 각 39cm인 정사각형으로 제작이 되어있었다. 용천사 해시계는 6.25 전쟁 때 사라졌다가 용천사 경내의 흙더미 안에서 발견되었다. 하지만 이때는 본래 모습의 절반 정도가 파괴되어있다. 파괴된 부분을 제외하고 보면 낮 시간을 의미하는 묘시에서 유시까지가 남아있기 때문에 지금도 사용은 가능하다고 한다.

용천사를 가는 길에는 함평이 자랑하는 꽃무릇 공원이 있다. 이곳은 한국의 자연 100경에 꼽힐 정도로 아름답고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우리나라에 피어있는 꽃무릇 중에 가장 화려한 자태를 가지고 있는 꽃무릇 공원은 용천사 입구에서부터 용천사까지 가는 동안 사람들의 시선을 단번에 빼앗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꽃과 꽃 사이를 유유히 날아다니는 산제비나비와 붉게 물든 잎이 활짝 피어 있는 꽃무릇의 풍경은 이곳을 더욱 매력적인 곳으로 보이게 한다. 꽃무릇 공원 중앙에 있는 넓은 호수는 주변을 둘러싼 꽃무릇과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더한다.
용천사 안쪽에도 피어있는 꽃무릇은 용천사를 방문한 사람들에게 환한 미소를 보이고 있다. 용천사의 풍경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바로 이 꽃무릇 사이에 자리 잡은 여러 가지의 불상이다. 아름다움 사이에서도 돋보이는 돌부처의 합장은 보는 사람의 마음까지 고요하고 평안하게 만들어 주는 힘이 있다. 이런 특별한 광경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용천사를 찾고 있기도 하다.





*웃자퀴즈 397 : 동그란 모양인데 만지면 물렁물렁하고 끝에 꼭지가 있는 것은?

*힌트:인터넷에 검색하면 정답이 있습니다. ㅎㅎㅎㅎ 매주 월요일 정답 공개 합니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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