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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기자/중구 블로그 기자

대구여행 - 대구시 중구 베스트경관 6선 사적 제290호 문화재로 지정 된 천주교 대구대교구 계산주교좌 대성당(계산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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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적290호 베스트경관 6선 계산성당 -

*천주교 대구대교구 계산주교좌 대성당(계산성당)은 사적 제290호로 문화재지정 되었으며 대구시 중구 베스트경관 6선입니다. 

이 건물은 서울과 평양에 이어 세번째로 새워진 고딕 양식이 가미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름다운 성당입니다.

 

 

1. 대구광역시의 근대골목길을 따라서 다니시면 우뚝 솟아있는 오래된 성당이 바로 우리나라 3대 성당 중 하나인 계산성당 입니다. 

남한에서는 서울 종로의 명동성당, 전주의 전동성당, 그리고 대구 계산성당이라고 합니다. 

2. 정식명칭은 천주교 대구대교구 계산주교좌 대성당입니다.

약식으로는 계산성당이라고 부릅니다.

 

3. 전면포토죤에서 찍은 계산성당 모습입니다.

코로나19 때문에 성당 내부출입은 통제되어 있습니다.

 

4. 후면포토존에서 찍은 계산성당 모습입니다.

뾰족한 2개의 첨탑이 특징적인데 뾰족한 건축물의 양식은 중세 12세기에 시작되어 르네상스 양식이 시작되기전 15세기 유행한 양식인 고딕양식의 특징이며, 고딕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로는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 빈의 슈테판 성당, 쾰른 대성당 등이 있는데 이 성당들에서도 뾰족한 첨탑을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정면 사진의 첨탑 외에 측면 출입구에도 작은 첨탑이 4개가 있습니다.

 

5. 계산성당이 사적 제290호로 지정이 되어있어서 인지 성당 주출입문 바로 옆에 사적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6. 이 건물은 서울과 평양에 이어 세번째로 새워진 고딕 양식이 가미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름다운 성당이라고들 해요.

프랑스인 프와넬 신부가 설계하고 서울 명동성당의 건립에 참여하였던 중국인들이 공사를 담당하여 1902년 완공하였답니다.

 

7. 성당 출입문을 바로 들어가면 화단에 처음 접하는 십자가와 소나무들이 보입니다.

소나무에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두나무가 마주보고 절하는 느낌이듭니다.

 

8. 이화단은 김보록 신부님 동상 주위로 성당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사진과 설명이 있어서 특징적 일들을 알 수 있었습니다.

 

9. 계산본당 초대 주임신부인 김보록신부 흉상이 있습니다.

150여년 전 멀리 떨어진 아시아의 발전을 못하고 근대화가 덜 됐던 타국까지 오셔서 왕성한 선교활동을 하셨다는 것에도 놀랍고 이름까지 개명한 것에 더 놀라웠습니다.

 

10.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한국 천주교회 선교 200주년과 순교자 103위 시성식을 기념하기위해 1984년 5월3일 부터 5월7일까지 한국교회를 사목 방움했고, 기간중 5월5일 대구 계산성당을 방문 했다는 사진입니다.

이외 10점의 사진도 야외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11. 성당 외부 잔디밭에는 1997년 부활대축일에 설치한 아기예수를 않은 성모마리아 상이 있었습니다.

 

12. 성당 외부 성모 마리아 상 좌우에 초를 켜고 기도를 드리는 장소도 있었습니다.

촛불을 켜놓는 것은 절에서 본적은 있었지만, 성당에서도 초를 켜고 기도를 한다는 사실은 오늘 처음 알게되었습니다.

 

13. 이나무는 이인성나무 인데요.

계산 천주교회 내에 있는 수령이 100년정도 된 이 감나무는 미술가 이인성이 1930년대에 그린 [계산 성당]의 배경이 된 나무 중 한 그루이므로 "이인성나무"라고 이름을 지었답니다.

 

14. 이인성화백이 1930년대에 그린 [계산 성당] 그림입니다.

 

15. 계산성당 옛 사제관 모형물은 1899년 한국식 십자형 성당이 건립되면서 부속 건물로 지어진 계산 성당 사제관은 30년이 지나면서 낡고 비좁은 건물이 되어서 계산성당 제2대 주임신부인 베르모렐 신부는 1929년 초에 자비로 사제관 공사를 착공하여 같은 해 7월 말에 완공하였답니다.

1995년에 안전과 조망상의 이유로 옛 사제관은 철거 되었고, 2017년에 현제의 모형을 제작하였답니다.

  

16. 계산성당 내 현재의 사제관 건물 모습입니다. 

 

17. 계산성당 문화관 건물 모습입니다.

 

18. 천주교 대구대교구 계산주교좌 대성당 역사관입니다.

코로나19 때문에 내부출입은 통제되어 있습니다.

 

19. 계산본당회관 건물 모습입니다.

 

20. 계산본당회관 전실에 있는 김대건신부 상입니다.

본당사무실은 손소독과 방영록에 서명후 출입 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내부모습을 담을 수 없어서 아쉽습니다. 

 

참고자료 : 다음백과.

 

※네이버지도에 주교좌계산대성당 표시해주세요.

 

 

 

*대구 계산성당

위치 :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 10 (계산동2가)

문화재지정 : 사적 제290호(1981년 9월 25일 지정)

이 건물은 서울과 평양에 이어 세번째로 새워진 고딕 양식이 가미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름다운 성당입니다.

프랑스인 프와넬 신부가 설계하고 서울 명동성당의 건립에 참여하였던 중국인들이 공사를 담당하여 1902년 완공하였습니다.

1911년에 주교좌성당이 되면서 종탑을 2개로 높이는 등 증축을 하여 1918년 12월24일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되었습니다.

평면은 라틴 십자형이고, 종탑부에는 8각의 높은 철탑 2개를 대칭구조로 세웠으며, 앞면과 양측에는 장미창으로 장식하였습니다.     

대구 최초의 서양식 건물이며 현존하는 1900년대의 성당건축물로 중요한 가치가 있습니다.

 

대구(大邱) 계산동(桂山洞) 성당(聖堂)은 1886년 대구 지역 선교 활동을 책임 맡고 부임한 로베르(1853~1922) 신부가 지금의 계산동 성당 부지를 매입하면서 건립되기 시작하였다. 1899년 한국식의 목조 십자형 건물으로 지어졌으나 1년 만에 화재로 모두 소실되었다. 그 후 재건축에 착수하여 로베르 신부가 설계하고,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함석이나 스테인드 글라스 등의 재료들은 프랑스 및 홍콩에서 들여와 사용하였다. 건물은 공사가 시작되고 3년이 지난 1902년에 완성되었다. 이 건물은 대구 지역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1900년대 초기의 건축물이다. 성당의 평면은 라틴 십자형 (Latin cross)으로 중심의 본랑(nave)과 양쪽의 측랑 (transept)으로 구성된다. 이런 평면 구조는 성당의 평면, 건물의 외부와 내부 공간에서 뚜렷하게 볼 수 있다. 또한 건물 전체적으로는 둔중한 로마네스크 양식을 띠고 있지만 첨탑과 스테인드글라스 등의 고딕적 요소들이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구계산동성당은 영남지방에 천주교를 토착화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하였으며, 1911년 조선교구로부터 분리, 대구대교구 주교좌 본당이 되었는데, 초대 주임신부에는 로베르를 임명하였다. 성당 부지에는 설계자를 기념하는 동상과 주교관이 있다. 이 성당 건물에서 동남쪽 600여m 지점에 있는 관덕정(觀德亭) 순교 기념관에는 을해 ·정해 ·병인박해 때 교우들의 은신처였던 한티고개·신나무골 등 교우촌에서 붙잡혀 처형된 순교자들의 유물 30여 점 등 65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김보록 신부흉상 

계산본당 초대 주임신부 김보록 신부흉상 1853년 1월22일~1922년 1월2일.

계산성당의 초대 주임신부님...김보록 신부님

150여년 전 멀리 떨어진 아시아의 발전을 못하고 근대화가 덜 됐던 타국까지 오셔서 왕성한 선교활동을 하셨다는 것에도 놀랍고,

이름까지 개명한 것에 놀라웠습니다.

 

 

*계산성당 옛 사제관 모형물

계산성당 옛 사제관 모형물은 1899년 한국식 십자형 성당이 건립되면서 부속 건물로 지어진 계산 성당 사제관은 30년이 지나면서 낡고 비좁은 건물이 되었습니다.

부임 초기부터 새 사제관 건립을 염원했던 계산성당 제2대 주임신부인 베르모렐 신부는 1929년 초에 자비로 사제관 공사를 착공하여 같은 해 7월 말에 완공하여습니다.

1995년에 안전과 조망상의 이유로 옛 사제관은 철거 되었고, 2017년에 현제의 모형을 제작하였습니다.  

 

 

*이인성나무

위치 :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2가 71번지(계산 천주교회 내).

수종 : 감나무

나무와 연관되는 인물 : 미술가 이인성.

이인성(1912~1950)님은 우리 대구출신의 천재화가로 수창초등학교를 졸업 하였으며, 1928년 [촌락의 풍경] 이라는 수채화를 세계 아동 아동미술전람회에 출품하여 특선을 차지하였습니다.

그후 1929년 부터 1944년까지 16년동안 한 차례도 거르지않고 조선미술전람회에 작품을 출품 하였고 14회 선전에서는 [경주의 산곡에서]으로 최고의 상인 창덕궁상을 수상하기도 하였습니다.

이 작품은 또한 1998년 모 미술잡지사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평론가 13명을 대상으로 [한국근대유화 베스트 10을 조사한 결과 1위로 선정되었으며 작가 인기도 조사에서도 1위를 차지하였답니다. 

대구시는 대구를 빛낸 그를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이인성 미술상을 제정하여 해마다 그 해의 가장 우수한 화가를 선정하여 시상하고 있습니다.

이 나무는 수령이 100년정도 된 감나무로 1930년대에 그린 [계산 성당]의 배경이 된 나무 중 한 그루이므로 "이인성나무"라고 이름을 지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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