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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기자/중구 블로그 기자

[대구여행] 대구시 중구 베스트 경관 20선 중 5선 3.1(3.8) 만세운동 행진로 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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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만세운동이 대구에서는 3.8 만세운동입니다.

1919년 3월1일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폭발한 조선독립만세 운동은 대구에서는 3월8일 오후에 일어났습니다.

3.1(3.8) 만세운동길은 대구 중구 베스트경관 20선중 5선입니다.

 

 

1. 이날 거사에 동참키로 한 많은 계성학교 신명학교 성서학당 대구고보 학생들은 경찰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동산병원  솔밭길을 이용하여 예정된 큰장안 강씨 소금집 앞으로 접근해 갔습니다.

 

2. 3.8 만세운동 행진로 황동판입니다. 

쌈지공원 입구부터 구,중앙파출소를 거져 한국근대역사관 까지 50m 간격으로 인도 바닥에 황동판이설치되어 있습니다. 

 

3. 동산병원 언덕 소나무 숲은 대구 3.1운동 성공에 말없이 이바지 한 비밀통로 구실을 했던 것입니다.

 

4. 3.1 독립운동 모자이크타일 벽화입니다.

지금은 그옛날의 우거진 소나무 숲도 그 속에 있었던 오솔길도 다시 사라지고 없습니다.

 

5. 청라언덕에서 내려 본 3.1 만세운동길 90계단입니다.

 

6. 3.1 만세운동길 90계단은 1919년 3월8일 만세함성이 메아리친 곳입니다.

 

7. 쌈지공원 3.1 만세운동길입니다.

약속의 날 1919년 3월8일 이 길은 계성 신명 대구고보 학생들이 대구 3.1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일본순사들의 감시를 피해가면서 서문시장 터를 향해 달려갔던 애국의 혼이 서린 길입니다.

            

8. 쌈지공원 입구부터 구,중앙파출소까지 3.8 만세운동 행진로에는 황동판이 인도바닥에 50m간격으로 설치되어 있습니다.

또한, 대구 중구 동산동 ‘3․1만세운동길’에서 옛 동산파출소에 이르는 250m구간에 ‘대구 3․8 만세운동 행진로’ 무궁화 명소길로 조성했습니다.

 

 

9. 대구 3.1 독립운동 발원지입니다.

옛 동산파출소 앞에서 대구 3.1 독립운동은 1919년 3월8일 오후2시 큰장입구에서 장날에 모인 군중을 향해 이민집과 김태련이 독립 선언문을  낭독하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침으로서 시작되었습니다.   

 

10. 대구 3.1 독립운동 발원지에서 대구근대 역사관(옛, 대구경찰서앞)로 방향을 바꾼 지점입니다.

 

11. 구,중앙파출소에서 대구근대 역사관(옛, 대구경찰서앞) 까지 3.8 만세운동 행진로 황동판이 인도바닥에 50m간격으로 설치되어 있습니다.

 

12. 3.8 만세운동 행진로 대구근대 역사관(옛, 대구경찰서앞)입니다.

 

13. 이곳은 경북도청(현, 경상감영공원)을 향해 나아가던 3.8 독립만세 시위대가 일제군경에 가로막히자 달상군청 쪽으로 방향을 바꾼 지점입니다.

 

14. 3.8 만세운동 행진로 약령시(옛, 영남제일관 자리)입니다.

 

15. 이곳은 종로를 가로질러온 3.8 독립만세 시위대가 동성로로 방향을 바꾼 지점입니다.

여기서 많은 학색, 노동자, 시민들이 만세시위대에 합류하였습니다.

 

16. 3.8 만세운동 행진로 중앙치안센터(옛, 남장대 자리)입니다.

 

17. 이곳은 약령시를 거쳐 온 3.8 독립만세 시위대가 달성군청(현, 대구백화점 부근)으로 한번더 방향을 바꾼 지점입니다.

마침내 시위대가 달성군청에 다다르랐으나 일제 군경의 폭력 진압으로 많은 부상자가 생겼습니다.

 

18. 대구 3.1 독립운동기념비입니다.

  

19. 대구의 3.8 독립만세시위는 1919년 3월8일 오후3시 약 800명의 군중이 큰장(서문시장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독립만세를 삼창하였습니다. 

1천여명으로 불어난 군중들은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외치며 경상감영길, 종로, 동성로를 거쳐 이곳(옛, 달성군청)까지 행진 하였습니다.

일제 군경의 폭력진압으로 많은 부상자가 생겼고 157명이 채포되었습니다. 

 

20. 대구의 3.1 독립운동은 1919년 3.1운동의 불길이 대구에서도 거세게 타올랐습니다.

3월8일 큰장(서문시장), 10일과 30일 덕산동 동문시장, 4월15일 대명동, 26일과 28일 미대동에서 독립만세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이 6회의 시위와 해성단에 3천명 이상이 참가했고, 그중 254명이 일제 군경에 체포되어 108명이 옥고를 격었습니다.

 

참고자료 : 다음백과.

 

※네이버지도에 청라언덕 표시해주세요.

  

 

 

*3.1운동길

1919년 3월1일 서울 파고다공원에서 폭발한 조선독립만세 운동은 대구에서는 3월8일 오후에 일어났습니다.

이날 거사에 동참키로 한 많은 계성학교, 신명학교, 성서학당, 대구고보 학생들은 경찰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동산병원  솔밭길을 이용하여 예정된 큰장안 강씨 소금집 앞으로 접근해 갔습니다.

그리하여 동산병원 언덕 소나무 숲은 대구 301운동 성공에 말없이 이바지 한 비밀통로 구실을 했던 것입니다.

지금은 그옛날의 우거진 소나무 숲도 그 속에 있었던 오솔길도 다시 사라지고 없습니다.

당시그위를 밟고 지나간 애국학생들의 발자취도 땅에선 찾을길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발자취는 땅밑에서 큰 진동으로 남아 지금도 크게 숨쉬고 있습니다. 

대구시는 3.1운동 84주년을 맞아 대구 3.1운동과 관계가있는 동산병원 솔밭과 닿았던 이 길을 비좁고 보잘것 없지만 오히려 이런 모습이 일제의 침략과 수탈로 피폐해진 우리 민족의 참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더욱 안타까움을 느끼게 합니다.

 

 

*3.1만세운동길(90계단)

1919년 3월8일 만세함성이 메아리친 곳입니다.

약속의 날 1919년 3월8일 이 길은 계성, 신명, 대구고보 학생들이 대구 3.1운동에 참여하기 위해 일본순사들의 감시를 피해가면서 서문시장 터를 향해 달려갔던 애국의 혼이 서린 길입니다.

 

 

*대구 3.8만세 행진로 무궁화 명소(2015.7.7.).

대구 중구청은 중구 동산동 ‘3․1만세운동길’에서 옛 동산파출소에 이르는 250m구간에 ‘대구 3․8만세운동 행진로’를 조성했다고 밝혔다.

‘대구 3․8만세운동 행진로 조성사업’은 1919년 전국적으로 일어났던 ‘3․1 만세운동’이 대구에서는 실제 3월 8일에 일어나 지역의 애국지사들이 행진한 역사적인 행진로를 알리기 위해 2014년 11월부터 추진됐다.

길이 250m, 폭 18m의 보차도 구분이 없던 이 도로는 각종 지장물을 이설하고 양측에 폭 2.6m의 보행로를 설치해 인근 학교를 통학하는 학생과 주민, 관광객들에게 큰 호응을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대부분의 지자체 조경사업에서 ‘무궁화’가 진딧물이 많고 관리가 어려워 외면당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지역의 역사성과 상징성을 고려해야한다’는 윤순영 중구청장의 생각으로 가로수의 수종은 무궁화로 결정하고 60여 그루를 식재했다.

윤순영 중구청장은 "대구 3․8만세운동 행진로 조성은 관광객들에게 안전하고 쾌적한 골목투어를 제공할 것이다"며 "대도시 도심 한복판에 무궁화거리가 조성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광복절에는 활짝 핀 무궁화꽃길을 걸을 수 있다"고 말했다.

 

 

*대구 3.1독립운동 발원지

옛 동산파출소 앞에서 대구 3.1독립운동은 1919년 3월8일 오후2시 큰장입구에서 장날에 모인 군중을 향해 이민집과 김태련이 독립 선언문을  낭독하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침으로서 시작되었습니다.   

2010.3.1. 대구광역시.

 

 

*대구의 3.1 독립운동.

1919년 3.1운동의 불길이 대구에서도 거세게 타올랐습니다.

3월8일 큰장(서문시장), 10일과 30일 덕산동 동문시장, 4월15일 대명동, 26일과 28일 미대동에서 독립만세시위가 벌어졌습니다.

이 6회의 시위와 해성단에 3천명 이상이 참가했고, 그중 254명이 일제 군경에 체포되어 108명이 옥고를 격었습니다.

 

 

*대구의 3.8 독립만세시위.

1919년 3월8일 오후3시 약 800명의 군중이 큰장(서문시장에서) 독립선언서를 낭독한 후 독립만세를 삼창하였습니다. 

1천여명으로 불어난 군중들은 태극기를 흔들고 만세를 외치며 경상감영길, 종로, 동성로를 거쳐 이곳(옛, 달성군청)까지 행진 하였습니다.

일제 군경의 폭력진압으로 많은 부상자가 생겼고 157명이 채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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