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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기자/중구 블로그 기자

대구여행 / 도심속의 일본식 사찰 대구시 중구 삼덕동 관음사 & 불자의 집 무료급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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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속에 위치한 일본식 사찰 대구광역시 중구 삼덕동 관음사 & 불자의 집 무료급식소를 소개합니다. 

사찰명 : 대한불교 조계종 관음사

위치 : 대구광역시 중구 공평로8길 15 ; 지번 삼덕동2가 26 (우)41940

전화 : 053-421-3700 대표전화 

 

 

 

1. 삼덕동 관음사 대문에서 정면으로 본당이 마주 보고 있으며, 대문 양측에 거대한 히말라야시다가 치솟아 있었으나 사찰을 가로막아서 지금은 베어내고 원둥치만 남아있습니다.

 

2. 관음사 앞 거리는 이른 저녁부터 새벽까지 불야성을 이룹니다.

그리고 먼 동이 트고 태양이 정수리를 지나는 동안 거리는 잠에듭니다.

삼덕소방서 맞은편에서 부터 경북대학교 병원까지 일직선으로 뻗어 있는 150m 남짓한 공평로8길은 젊은이의 먹자 거리라 불리며 북적거립니다.

이곳이 바로 삼덕동 관음사(觀音寺) 골목입니다.

 

3. 관음사 앞길에 문 걸어 잠근 가겟집 사이에 붉은 벽돌로 쌓아올린 높은 담장이 있습니다.

대문 넘어 직선의 용마루를 가진 팔작지붕이 언뜻 보입니다.

은빛의 스테인리스 대문은  활짝 열려 있습니다.

 

4. 대문에서 정면으로 본당의 입구와 마주합니다.

본당은 정면 3칸, 측면 7칸으로 팔작지붕의 박공부가 정면입니다.

용마루와 처마는 직선이며, 박공 단부의 삼각형 모서리는 현어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서까래는 수평으로 배치되어 있고, 단청은 하지 않았습니다.

본당의 현판은 ‘무설전’입니다.

 

5. 어간의 문은 미서기문이며 문 위에는 구름과 같은 문양이 얕게 새겨진 보가 놓여 있습니다.

건물은 목조가구로 사각형의 가느다란 기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전통 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입니다.

관음사는 일제시대에 일본인이 지은 일본식 사찰입니다.

 

6. 관음사는 1916년 일본인 승려가 창건 하였습니다.

대구읍성의 돌로 초석 놓아 1968년 동화사 원명스님이 폐허가 된 절 주지로 오면서
관음사로 이름 바꿔 새로 짓자는 의견 많았지만, 멀쩡한 건물을 부수고 신도에게 시주금 내라 할수 있느냐며, 그대로 둬 

무료급식소 ‘불자의 집’을 운영하여 노숙자, 홀몸 어르신 식사를 챙겨 드립니다.

 

7. 본당의 초석은 해체되어 흩어진 대구읍성의 돌이라고 합니다.

반듯한 장방형의 돌들은 완전히 숨겨지지 않은 채 드러나 있습니다.

마당 곳곳에서도 읍성의 것으로 여겨지는 돌들이 보입니다.

 

8. 오늘이 마침 관음사에 법회가 있는 날이어서 무설전 법당 내부를 볼 수 있습니다.

평일에는 법당에 문이 잠겨 있어서 내부는 볼 수 없습니다.

 

9. 관음사의 요사채와 화단, 오른쪽 건물이 본당과 같은 시기에 건축된 고리 건물이다.

사각의 작은 화단을 사이에 두고 본당과 나란히 고리가 자리합니다.

 

10. 현재 종무소 건물로 쓰이는 고리는 원래 부엌의 기능을 겸하는 승려의 거주 장소였습니다.

본당과 같은 시기에 지어진 고리는 원래 여러 개의 다다미방을 복도가 둘러싸고 있는 구조였지만, 이후 복도 앞으로 방을 덧붙여 내고 다다미도 철거해 예전 형태는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11. 관음사 화단에는 일본에서 어린아이들의 수호신으로 여기는 지장보살상과 꼭 닮은 석조물과 몇 개의 돌팍이 놓여 있습니다.

 

12. 법당 앞에 일본식 석등 하나가 서있습니다.

법당앞 화단에는 옥개석의 끝이 고사리처럼 말려있는 ‘카스가 석등’도 있습니다.

 

13. 화단에는 몇 개의 석조물과 돌팍이 놓여 있습니다.

비가 내리면 본당 지붕을 타고 내린 빗물이 돌팍에 고일 것입니다.

 

14. 말일성도회의 교회가 있던 부지에는 이후 서점이 들어섰다가 식당이 되었는데, IMF 외환위기때 관음사 소유가 되었습니다.

 

15. 지금 이곳은 관음사 부설 무료급식소 ‘불자의 집’이 있습니다.

 

16. 150여명의 봉사자들이 매주 목, 금, 토요일마다 하루 230 여명의 노숙자와 지역의 홀몸 어르신을 위해 봉사합니다.

불자의 집은 관계기관의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매년 바자회를 열어 수익금 전액을 무료급식을 위해 쓴답니다.

 

17. 그러나,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매주 금요일 만 도시락으로 포장해서 제공합니다.

코로나19 여파로 바자회도 열 수 없으므로 기부자의 성금으로 식재료를 구입해서 자원 봉사자의 도움을 받아서 운영합니다.

  

18. 오늘 조리실에서 봉사하시는 분은 대구공업전문학교 남여 자원봉사자 들입니다.

 

19. 여러 식자재들은 기부자의 성금으로 구입합니다. 

기부자는 오늘 식단표를 보고 현금이나 물품으로 기부한답니다.

 

20. 밥, 국, 돼지고기 뽁음, 김치를 자원봉사자 들이 각자 맏은 임무에 따라 준비된 그릇에 각각 130여팩을 포장합니다.

 

21. 오늘 점심은 밥, 국, 돼지고기 뽁음, 김치, 배, 청포도, 오랜지 입니다.

 

22. 오늘 제공할 음식을 비닐봉제에 합봉합니다.

 

23. 길게 늘어선 줄은 노숙자와 지역의 홀몸 어르신 들입니다.

2번 받아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선착순으로 오른쪽 손바닥에 번호표를 기재해 줍니다.

일찍 오신분은 오전 10시경 부터 줄을 섭니다.

 

24. 대구공업전문대학교 최영준 교수님이 오른쪽 손바닥에 번호표를 확인하고 포장된 음식을 제공합니다.

교수님은 매주 불자의 집에 자원봉사합니다.

 

※네이버지도에 관음사 표시해주세요.

 

 

*유튜브 동영상 링크 바로가기 : 화면 좌측 하단 다음에서보기 눌러주세요!

https://youtu.be/24sHHWxtXOE

 

 

 

♥ 도심에 자리한 일본식 사찰, 관음사

사찰명 : 관음사

위치 : 대구광역시 중구 공평로8길 15 : 지번 삼덕동2가 26 (우)41940 

전화 : 053-421-3700 대표전화

삼덕동 관음사 대문에서 정면으로 본당이 마주 보고 있으며, 대문 양측에 거대한 히말라야시다가 치솟아 있었으나 사찰을 가로막아서 지금은 베어내고 원동치만 남아있습니다.
관음사 화단에는 일본에서 어린아이들의 수호신으로 여기는 지장보살상과 꼭 닮은 석조물과 몇 개의 돌확이 놓여 있습니다.
관음사 앞 거리는 이른 저녁부터 새벽까지 불야성을 이룹니다.

그리고 먼 동이 트고 태양이 정수리를 지나는 동안 거리는 잠에듭니다.

삼덕소방서 맞은편에서부터 경북대학교 병원까지 일직선으로 뻗어 있는 150m 남짓한 공평로8길은 한때는 음악카페 거리, 문화의 거리라 불리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오래된 깃발 같은 이름이 있습니다.

그곳이 바로 삼덕동 관음사(觀音寺) 골목입니다.

  관음사는 문 걸어 잠근 가겟집 사이에 붉은 벽돌로 쌓아올린 높은 담장이 있습니다.

담장 너머로 짙푸른 히말라야시더 두 그루가 치솟아 있었지만 지금은 베어내고 원둥치만 남아있습다.

대문 넘어 직선의 용마루를 가진 팔작지붕이 언뜻 보입니다.

은빛의 스테인리스 대문은  활짝 열려 있습니다.

대문에서 정면으로 본당의 입구와 마주합니다.

본당은 정면 3칸, 측면 7칸으로 팔작지붕의 박공부가 정면입니다.

용마루와 처마는 직선이며, 박공 단부의 삼각형 모서리는 현어(懸魚)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서까래는 수평으로 배치되어 있고, 단청은 하지 않았습니다.

어간의 문은 미서기문이며 문 위에는 구름과 같은 문양이 얕게 새겨진 보가 놓여 있습니다.

건물은 목조가구로 사각형의 가느다란 기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전통 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입니다.

관음사는 일제시대에 일본인이 지은 일본식 사찰입니다.
관음사는 1916년 일본인 승려가 창건 하였습니다.

대구읍성의 돌로 초석 놓아 1968년 동화사 원명스님이 폐허가 된 절 주지로 오면서
관음사로 이름 바꿔 새로 짓자는 의견 많았지만, 멀쩡한 건물을 부수고 신도에게 시주금 내라 할수 있느냐며, 그대로 둬 

무료급식소 ‘불자의 집’을 운영하여 노숙자, 홀몸 어르신 식사 챙겨 드립니다.
일제 강점기 초, 이 일대는 대부분이 논밭인 대구 읍성의 동쪽 외곽이었습니다.

일제는 논밭을 갈아엎어 신작로를 내고 법원, 형무소, 세무감독국 등의 행정 기관을 세웠습니다.

도청, 우체국, 검찰청, 전매청 관사와 거상의 저택도 들어섰습니다.

관음사는 그들을 위해 지어진 절집으로 원래 이름은 선림사라 전합니다. 기록에는 1916년경 일본인 승려에 의해 창건되었고 1919년 동양척식회사의 상무이사가 희사했다고 전합니다.
본당의 초석은 해체되어 흩어진 대구읍성의 돌이라고 합니다.

반듯한 장방형의 돌들은 완전히 숨겨지지 않은 채 드러나 있습니다.

마당 곳곳에서도 읍성의 것으로 여겨지는 돌들이 보입니다.

본당의 현판은 ‘무설전’입니다.

그 앞에 일본식 석등 하나가 서있습니다.

법당앞 화단에는 옥개석의 끝이 고사리처럼 말려있는 ‘카스가 석등’도 있습니다.

관음사의 요사채와 화단, 오른쪽 건물이 본당과 같은 시기에 건축된 고리 건물이다.
사각의 작은 화단을 사이에 두고 본당과 나란히 고리가 자리합니다.

현재 종무소 건물로 쓰이는 고리는 원래 부엌의 기능을 겸하는 승려의 거주 장소였습니다.

본당과 같은 시기에 지어진 고리는 원래 여러 개의 다다미방을 복도가 둘러싸고 있는 구조였지만, 이후 복도 앞으로 방을 덧붙여 내고 다다미도 철거해 예전 형태는 거의 남아있지 않습니다.

화단에는 몇 개의 석조물과 돌팍이 놓여 있습니다.

비가 내리면 본당 지붕을 타고 내린 빗물이 돌팍에 고일 것입니다.

가만히 바라보면 빗방울 소리 들리는 듯합니다.

일제 강점기 동안 세워진 일본사찰은 1915년에 시행된 ‘신사사원규칙’에 따라 본당과 고리는 각각 25평 이상, 부지는 300평 이상 갖추어야 했습니다.

건물 외에 충분한 공지를 확보하게 한 것입니다.

그것은 각종 식민정책에 부응하는 활동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그 땅에 불자의 집이 있습니다.

삼덕동의 삼덕(三德)이란 모든 번뇌를 소멸한 단덕(斷德), 지혜로써 있는 그대로를 보는 지덕(智德),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은혜를 베푸는 은덕(恩德)을 뜻합니다.

관음은 자비를 덕으로 하는 보살님입니다.

현재의 관음사는 삼덕을 통해 삶과 함께 현재로 이어져 온 것입니다.

광복 후 남아있던 일본 사찰은 남한에만 120여개, 그중 원형이 남아있는 세 곳 정도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원형의 유지는 삶과 유리되어야 가능합니다.

관음사는 현재 조계종 산하 송광사의 말사입니다.

 

 


♥ 관음사는 폐허에서 재건하였슴

광복 후 적산으로 분류된 절집은 여성 신도 6명에게 불하되어 이어졌고 고리의 오른쪽 부지는 말일성도교회의 부지로 넘어갔습니다.

1948년 ‘경북도 소재 전 일본불교 사원과 교회에 대한 조사’를 보면 일본의 신사나 불교사원이 자리하고 있던 곳에 교회, 신학교 등과 같은 기독교 관련 시설이 들어서 있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곳은 그나마 절집으로서의 기능을 근근이 이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6·25전쟁이 터지면서 절집은 경찰의 주둔지가 되었고, 그들이 떠난 후의 절집은 거의 폐허였다고 합니다.
1968년 신도들의 청으로 동화사의 원명스님이 주지로 오면서 이 절집은 ‘관음사’가 되었습니다.

스님이 처음 왔을 때 관음사는 ‘연탄이 탄 것 한 장, 덜 탄 것 한 장, 안 탄 것 한 장’이 전부였다고 합니다.

재건의 시간이 10여년, 그로부터 다시 20년이 훌쩍 넘은 지금 관음사는 많은 부분이 변해 있습니다.

요사채가 증축되었고 본당의 창호와 고리의 구조도 바뀌었습니다.

부처님을 모신 내진과 절을 올리는 외진으로 구분되는 본당의 일본식 공간구조는 그대로지만 바닥의 다다미는 장판으로 교체되었습니다.

붉은 벽돌 담장은 80년대 말 소방도로 공사로 1.2m 정도 후퇴해 다시 쌓은 것이라 합니다.

원래의 철근콘크리트 담장이 관음사의 서쪽 벽으로 남아있습니다.

늙은 나무 전주가 옛 담장의 모서리에 서 있습니다.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짓자는 의견도 많았다 합니다.

원명스님은 이렇게 말했다고 전합니다. “누가 지었든 어떻게 멀쩡한 건물을 부수고 또 신도들에게 시주금을 내라고 할 수 있느냐.”

 

 


♥ 삼덕동 관음사 ‘불자의 집’ 무료급식소

말일성도회의 교회가 있던 부지에는 이후 서점이 들어섰다가 식당이 되었는데, IMF 외환위기때 관음사 소유가 되었습니다.

지금 이곳에는 관음사가 운영하는 무료급식소 ‘불자의 집’이 있습니다.

150여명의 봉사자들이 매주 목·금·토요일마다 하루 230여명의 노숙자와 지역의 홀몸 어르신을 위해 봉사합니다.

불자의 집은 관계기관의 도움 없이 자체적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매년 바자회를 열어 수익금 전액을 무료급식을 위해 쓴답니다.

그러나,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매주 금요일 만 도시락으로 포장해서 제공합니다.

코로나19 여파로 바자회도 열 수 없으므로 기부자의 성금으로 식재료를 구입해서 자원 봉사자의 도움으로 운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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