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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기자/중구 블로그 기자

대구여행 / 19년전 대구시 중구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 일어난 2.18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기억공간 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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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전 뇌졸증과 우울증을 앓던 50대 남성 방화범이 대구시 중구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서 전동차에 불을 질러 전동차 2대에 타고 있는 승객 192명이 사망하고 부상 151명, 실종 21명이라는 전대미문의 끔찍한 사고가 일어난 곳 바로 중앙로역 지하2층에 있는 2.18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기억공간을 소개합니다.

 

 

1. 대구시 중구 대구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 지하 2층에 마련되어 있는 "2.18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기억공간" 들러 당시의 끔찍했던 기억들을 상기해 보았습니다.

 

2. 2.18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기억공간은 당시 화재가 발생한 중앙로역 3,4번 출입구 지하 2층 동편에 위치해 있습니다.

 

3. 여기가 바로 끔찍한 참사가 일어났던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 승강장입니다.

 

4. 중앙로역 지하 2층 동편에 위치한 지하철 통로 기둥에 2.18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기억공간이라는 안내 문구가 있어 찿기쉬웠으며, 기억공간 내에는 아이들과 함께 관람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5. 지하 2층 바닥에는 촟불그림과 국화그림, 거북이그림, 사랑하는 내딸아 시, '2.18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기억공간'이란 글을 황동주물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6. 기억공간 외벽에는 당시 사망자 명단(192명)이 빼곡히 적혀 있어 눈길을 끕니다.

무엇보다 70~80년대 생의 젊고 어린 희생자가 많아 안타까웠는데, 이 때가 봄방학 기간이라 학생(47명 희생)이 많았고, 특히 계명대학교 졸업식 참석(18가족 희생) 등으로 인해 젊은이들의 희생이 컸다고 합니다.

또한 2명 이상의 가족이 동시에 참변을 당한 유가족이 12가구에 이르러 그 아픔을 더하고 있습니다.

 

7. 이 기억공간은 2015년 사고 12주기에 맞추어 국민성금 5억 2천만원을 들여 이 곳 중앙로역 지하 2층에 길이 27m, 폭 3m, 넓이 340m2의 추모벽을 마련하였습니다.

 2.18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는 대한민국에서 철도관련으로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기록한 참사였지만, 2014년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에 비해 피해 보상, 사후 조치 등 여러 측면에서 소홀한 점이 많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8. 화재로 인해서 당시에 쓰였던 유료 물품보관 캐비넷도 그을리거나 열에 의해 녹아있던 것이 당시에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218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 기억공간 안에 있는 벽면에 수많은 사람들이 남겨놓은 글씨도 있었습니다.

 

9. 윤경재단 곽병원에서 설치한 혈압측정기가 불에 녹아내린 모습입니다.

 

10. 화재 참사 전 혈압측정기 모습입니다.

 

11. 당시의 공중전화기 부스입니다.

화재의 열기 속에 수화기가 다 녹아 내렸습니다.

 

12. 화재 참사 전공중전화박스 모습입니다.

 

13. 화재현장 보존벽입니다.

 불에 그을린 통곡의 벽에는 환풍기와 금연 포스터이 남아 있고, 벽면에는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글 들이 빼곡히 적혀 있어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14. 광고판도 그을려 있거나 살짝 녹아있는 것도 있는 참사 모습입니다.

 

15. 대구지하철 참사가 있던 날 그 열기가 얼마나 뜨거웠으면 편의점에서 흔히 있는 CMA 기계가 녹아내린 부분도 있고  까맣게 그을려져 있었습니다.

 

16. 불에 녹아내린 현금자동지급기가 당시의 참상을 말해 줍니다.

 당시의 희생자들은 대부분 유독가스에 의한 질식사로 추정되고, 유해는 불에 타버려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만큼 처참한 상태였다고 하니, 그 애련함은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17. 화재 참사 당시 1080호 전동차의 객차 연결통로 출입문 일부입니다., 

 

18. 화재 참사 당시 1080호 전동차의 객차와 객차를 연결하던 링크부분입니다.

 

19. 촤축은 화재참사 당시 현장에서 발견된 유류품 핸드폰 잔해입니다. 우측은 버클 및 머리핀입니다.

 

20. 촤축은 화재참사 당시 현장에서 발견된 유류품 수첩 및 필기구입니다. 우측은 신발입니다.

 

21. 기억공간 맨 북편에 조성된 추모벽입니다.

원형 벽면에는 희생자들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있고, 앞에는 희생자의 신발과 꽃다발이 놓여 있습니다.

이 곳에서는 매년 2월 18일 희생자들을 위한 추도식이 열리는곳입니다..

 

22. 96년생, 91년생, 85년생, 81년생 학생들도 있습니다.

꽃다운 나이에 희생된 젊은이들의 이름 앞에서, 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기성 세대의 죄스러움과 안타까움에 만감이 교차합니다.

 

23.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우리는 그날의 기억을 재구성하여 미래로 나아가야 합니다.

대구지하철 화재 참사로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24. 대구지하철 중앙로역 화재 참사 시간대별 상황표입니다.

2003년 9시 52분 1079전동차가 중앙로역에 진입하는 순간, 9시 53분 방화범 김대한(당시 56세)이 라이터로 휘발유에 불을 붙이고 휘발유통을 바닥에 던져 순식간에 전동차가 불길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어 9시 56분 반대편 108호 전동차가 중앙로역에 진입하면서 차량 2대가 모두 전소되는 대형 피해가 발생하였다.

 

25. 화재가 휩쓸고 간 처참한 현장입니다.

 

26. 그후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 설립과 대구국제소방안전엑스포 시행 안내문입니다.

 

27. 화재 참사 후 대구도시철도공사의 사고 개선책입니다.

 전동차 내장제를 불에 타지 않는 재질로 전면 교체, 비상시 대비 승객안전용 비상설비 개선, 안전의식을 높이기 위한 교육훈련 강화 등이 마련되었습니다.

 늦게나마 개선되어 다행이긴 하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격언 처럼, 아까운 희생자가 발생하기 전에 미리 개선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28. 떠난이의 넋을 기리며 해마다 이어지는 추모제 모습입니다.

 

86면

29. 친구야 이젠  참사 현장에서 나왔겠지 그만 헤메고 좋은데 가서 잘살아라 친구야 친구야....

방화범 김씨는 범행 1년 뒤인 2004년 8월31일 수감중이던 진주교도소에서 지병 악화로 숨졌다.

 

※네이버지도에 중앙로역 대구1호선 표시해주세요.

 

*유튜브 동영상 링크 바로가기 : 화면 좌측 하단 다음에서보기 눌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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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Hj-E_Tx1BgE

 

 

*기억공간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53분, 지하철화재참사로 192명의 사망자와 151명의 부상자가 발생항 사고현장입니다.

우리는 그날의 아픔을 있지 않고 추모하는 시민추모벽인 이곳을 '기억공간'이라 부릅니다.

 시민 여러분들이 잊지 않고 그 날을 기억해 주세요.

더 안전한 도시 대구, 대구시민들과 함께합니다.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Daegu subway fire)

요약 : 2003년 2월18일 오전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에서 우울증을 앓던 50대 남성의 방화로 사망자 192명 등 340명의 사상자를 낸 대형 참사다. 단순히 방화로 인한 것보다 지하철 공사 관계자들의 무책임하고 서툰 대처 능력, 비상대응기관 직원들의 허술한 위기 대응, 전동차의 내장재 불량 등 전반적인 안정망의 허점과 정책상의 오류가 참사를 발생시킨 ‘인재’로 기록됐다.

 

대구 지하철 참사는 2003년 2월18일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 구내에 진입한 전동차 안에서 방화로 인한 화재가 발생해 사망자 192명, 부상자 148명 등 340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대형 참사다.

 

이날 오전 9시53분 진천역을 떠나 안심역 방향으로 향하던 대구지하철 1호선 1079호에 김아무개(당시 56세)씨가 인화물질이 든 음료수 페트병 두 개를 들고 앉아 있었다. 김씨는 라이터를 꺼내 불을 켰다, 껐다하며 이를 수차례 반복했다. 1079호 전동차는 대구시 중구 남일동 중앙로역 구내에 들어섰다. 김씨는 돌연 바닥에 인화물질을 쏟아 부은 뒤 불을 붙였다. 전동차 안에는 화염이 솟았다. 김씨는 정차 중 열린 문으로 빠져나가 대피했다.

 

불길에 휩싸인 전동차가 아수라장이 되며 승객들이 대피하자 1079호 전동차 기관사 최아무개(당시 32)씨는 본부 통제실 사령에게 즉각 보고하고 후속 열차 진입을 막고 진화와 구조 활동이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조처를 해야했음에도, 당황한 채 기관실을 나와 대피해버렸다. 이 방화로 인한 화재로 본부 사령실에서 경보 램프가 요란하게 울렸지만 사령(중앙상황실 책임자)은 기관사의 보고가 없어 ‘오경보’로 예단하고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았다.

 

이처럼 상황 전파가 제대로 되지 않은 ‘오류’는 사건을 ‘참사’로 악화시켰다. 화재 발생 사실을 모른채 1080호 열차가 중앙로역에 진입했던 것이다. 정차해 있는 1079호가 불길에 휩싸인 것을 본 1080호 기관사 최아무개(당시 37)씨는 1079호와 교신을 시도했지만 응답이 없었다. 이를 본부 사령실에 보고하자 사령은 ‘기다리라’고 지시했다. 뒤늦게 화재 사실을 파악한 사령은 1080호 기관사에게 ‘중앙로역을 떠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이미 화염으로 인해 1080호 기관실과 연결된 전력 공급선이 타버려 1080호 전동차는 동력을 잃어 움직일 수가 없는 상태였다. 전등마저 꺼져 1080호 전동차는 암흑 천지가 돼버렸다. 본부 사령은 뒤늦게 1080호 기관사 최씨에게 ‘모든 객차 출입문을 개방하고 승객들의 대피를 도우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그는 1079호 기관사 최씨처럼 직업정신을 잃고 혼자 몸을 피해버렸다. 평소의 습관적 행동 탓인지 기관실에 꽂혀 있는 마스터키마저 뽑아 가져가버려 다른 직원이 와도 전 전동차의 문을 열 수 없게 만들버렸다. 이 와중에 우연히 1080호 객차에 타고 있던 코레일 금호역장 권춘섭씨가 위험을 무릅쓰고 비상 개폐 장치를 찾아 문을 열고 다른 승객들을 먼저 대피시켜 감동을 줬다. 이후 소방관과 경찰관들, 구급대원들, 이들에게 필요한 물과 수건 등을 날라준 상인들과 주민 등의 헌신과 수고가 이어졌다. 그러나 실제 방화가 발생한 1079호 전동차보다, 1080호 전동차에서 훨씬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또 중앙로역 지하 3층 구조물 내부와 전동차 동력 전원선로, 지하 1,2층도 크게 불에 탔다. 사고 현장은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됐다.

 

대구지하철 참사는 대구 도시철도의 미흡한 위기 대응 체계와 기관사들의 평소 훈련·직업정신 결여와 함께 객차 좌석과 손잡이 등의 시설물 소재로 난연 또는 불연재를 사용하지 않은 구조적 문제가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한 ‘인재’로 평가됐다.

 

 

*방화범 김대한(당시 56세)

김씨는 참사 2년 전인 2001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오른쪽 몸을 잘 쓰지 못하는 2급 지체장애인이었다. 상해 등 전과 2범인 김씨는 병을 얻기 전에는 6년동안 개인화물차와 택시운전을 했다. 부인은 청소용역회사에 다니고, 회사원 아들과 학원 강사 딸을 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씨는 범행 당시 손과 발에 화상을 입어 병원 구급차에 실려 대구시 북구의 한 병원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다 목격자들이 범인으로 지목해 범행 2시간여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김씨는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거동이 불편한데서 오는 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며 자살소동을 벌이기도 하고,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당시 “지병 등으로 인해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김씨가 자포자기 상태에서 범행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검찰은 김씨를 ‘현존 전차 방화 치사상죄’로 사형을 구형했다. 법원은 김씨가 처해있던 상황의 정상을 참작하고 사망자 대다수가 김씨의 방화 행위에 따른 직접적인 결과가 아닌 대구지하철쪽의 잘못된 대응으로 숨진 정황을 인정해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김씨는 범행 1년 뒤인 2004년 8월31일 수감중이던 진주교도소에서 지병 악화로 숨졌다.

 

 

*참사이후

2004년 4월 대법원은 업무상과실치사상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1080호 기관사 최씨에게 금고 5년, 1079호 기관사 최씨에게 금고 4년, 종합 사령 방아무개(당시 46)에게 금고 4년, 종합 사령 홍아무개(당시 46), 종합 사령 손아무개(당시 52)씨에게 금고 3년형을 각각 확정했다.

 

화재의 직접적 원인은 방화였지만 이보다 전동차의 내장재 불량, 차량 내부구조의 문제, 역사 소방 설비의 미비, 지하철 공사 관계자들의 서툰 대처 능력, 비상대응기관 직원들의 허술하고 느린 위기 대응 등 전반적인 안정망의 허점과 정책상의 오류가 더 큰 문제로 지적됐다. 대구지하철화재참사 이후 정부에서는 참사 이후 나타난 문제점을 보완하고, 각종 재난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신체,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재해와 재난 등으로 다원화돼 있는 재난관련 법령(자연재해법, 재해구호법, 재난관리법)의 주요 내용을 통합해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제정(2004년 3월11일)했고, 중앙정부 차원에서 각종 재해와 재난의 효율적 예방과 관리를 전담할 조직인 소방방재청(2003년 3월17일)이 설치되는 등 재난관리에 변화가 있었다.

 

 

*시간대별 상황

사고 발생 초기 대구지하철공사 종합 사령실의 전동차 운행 및 통화 기록, 대구시 소방 본부 119 종합 상황실의 119 신고접수 및 무전상황 기록, 생존자들의 진술내용, 언론 보도내용 등을 종합하여 시간대별로 상황을 재구성하면 다음과 같다.

 

1. 9시 30분 정각

방화범 김대한이 방화를 목적으로 주유소에 방문하여 휘발유 7500원 어치 상당을 구입한 뒤 1호선 송현역 안심방면 승강장에서 안심행 1079열차 1호차에 탑승함.

2. 9시 52분 32초 - 1079열차 중앙로역 도착

안심행 1079열차가 중앙로역에 도착.

3. 9시 53분 정각 - 화재발생

안심행 1079열차가 중앙로역에 진입하는 순간 전동차에 타고 있던 방화범 김대한이 휘발유에 라이터를 켜 불을 붙임.

불이 방화범의 옷으로 옮겨 붙자 방화범이 휘발유통이 든 가방을 전동차 바닥에 던져 불이 전동차 벽면과 천장 등에 옮겨 붙음.

전동차 내부가 급속히 타들어 갔고, 많은 양의 검은 연기와 유독성 가스가 분출되어 승강장과 지하 1~2층의 대합실 등에 급속히 확산.

승객들은 주출입구 쪽의 계단을 통해 대피하기 시작.

1079열차 기관사는 소화기로 불을 끄려고 시도하였으나 실패하였으며, 화재발생 사실을 종합사령실에 보고하지 않은 채 역사 밖으로 대피.

종합사령실 기계설비사령 주컴퓨터에 중앙로역 화재경보 문구가 뜨고 경보음이 울렸으나, 종합사령실에서는 확인을 하지 않음.

4. 9시 53분 35초 ~ 9시 54분 40초

1079열차의 40대 남자승객이 중앙로역 전동차 안에서 화재가 발생되었다는 내용을 소방본부 종합사령실에 최초 신고, 이후 역시 밖으로 탈출한 승객들과 전동차 안에 갇힌 승객들과 휴대전화 통화를 한 가족 등이 현장의 상황을 소방본부 종합상황실에 신고.

소방본부 종합상황실에서는 삼덕파출소 등 8개 출동대에 출동명령.

5. 9시 55분 정각

중앙로역 역무원이 종합사령실에 "중앙로역 실제 화재입니다. 전혀 앞이 분간이 안 됩니다. 신고 좀 부탁드립니다."라며 중앙로역 화재사실을 신고하였으나, 종합사령실에서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고 119 신고를 하지 않았음.

6. 9시 55분 30초

1080열차가 대구역에서 중앙로역으로 출발.

중앙로역 역무원이 초기 소화를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일부 직원이 승객 대피 유도.

7. 9시 55분 36초

종합사령실 운전사령이 전체 열차에 "중앙로역 진입 시 조심하여 운전하여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지금 화재가 발생했습니다."라고 열차무선 전체 호출을 통하여 통보.

8. 9시 56분 45초 - 1080열차 중앙로역 도착

대곡행 1080열차가 이미 검은 연기가 가득 차 있던 중앙로역 승강장에 도착하여 출입문이 자동으로 열림.

승강장에 있던 연기가 전동차 안으로 밀려들자 기관사가 즉시 출입문을 닫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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