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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기자/중구 블로그 기자

대구여행 / 대구광역시 중구 천주교 순교 성지 관덕정순교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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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덕정순교기념관은 천주교 순교 성지입니다.

위치 : 대구광역시 중구 관덕정길 11 (우)41967,  지번 : 남산동 938 -19

전화 : 053 - 254 - 0151

개관일 : 화요일~일요일

관람시간 : 오전 9:30~ 오후 4:30

휴무일 : 매주 월요일(설연휴, 추석연휴, 부활절 및 성탄절 당일)

 

 

1. 순교기념관이 세워진 이곳은 아미산 이라고 불리던 언덕바지 땅으로 조선시대 사상범을 처형하던 형장이었습니다.

천주교를 박해하던 시절 (을해박해, 정해박해, 기해박해, 병인박해)에 경상도 전역에서 체포된 신자들이 대구감영으로 이송되어 와서 이곳 관덕당 형장에서 순교하신 분들과 대구감영에서 옥사하신 분들을 기리는 뜻으로 이 자리에 1991년 5월 31일 관덕정순교기념관을 개관하였습니다.

 

2. 2007년 기념관 옆에 신관도 개관하였습니다.

건물 위의 단청 문양 누각은 카돌릭 상징을 담고 있고, 화강석 건물 벽은 순교자들의 굳건한 신앙과 얼을 기리고 있으며, 외벽 부조는 하느님께 대한 순교자들의 사랑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건물 안에는 성당과 이윤일 요한 성인의 유해를 비롯한 성인들의 유해가 모여져 있으며, 순교자들과 관련된 많은 사료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3. 좌측은영천시 신녕면에서 발견된 척화비, 중앙은 성 이윤일요한 동상, 우측은 순교 복자 11분의 기념비입니다. 

 

4. 스테인드 글라스(stained glass)

'Stained'라는 영어 형용사는 전통적으로 그림 장식 창을 만드는 데 사용된 유리를 가리키지만, 엄밀히 말하면 모든 색깔 있는 유리나 녹아 있는 유리 원액에 여러 가지 금속산화물을 첨가해 착색한 모든 유리라고 할 수 있다.

 

5. 관덕정 순교기념관 연표

1749년 경상도 관찰사 겸 대구도호부사 민백상 관덕정 설립 부터

2020.11. 관덕정 순교기념관 건립 30주년 기념 재개관 까지 기록되어 있습니다..

 

6. 제1 전시실

1801년 신유박해 이후 충청도와 전라도에 숨어 살던 신자들이 경상도 산골로 숨어 들었고, 경상도 지역 교우촌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이때 생긴 대표적인 교우촌은 진보의 머루산, 청송의 노래산 영양의 곧은정, 봉화 우런전 등입니다.

달래 신부의 말처럼 박해의폭풍은 경상도 곳곳에 복음의 씨를 날렸습니다.

 

7. 경상도 지역에 언제 천주교 신앙 공동체가 형성 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1800년 이전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1791년 신해박해 보다 박해의 정도가 심했던 1801년 신유박해 이후 충청도와 전라도에 숨어 살던 신자들이 경상도 산골로 숨어들었고, 경상도 지역 교우촌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이때 생긴 대표적인 교우촌은 진보의 머루산, 청송의 노래산, 영양의 곧은정, 봉화 우련전 등입니다.

달래 신부의 말처럼 박해의 폭풍은 경상도 곳곳에 복음의 씨를 날렸습니다.             

 

8. 한티에서 출토된 옹기와 자기 조각입니다.

한티는 임진왜란 당시부터 피난처였던 팔공산 깊은 산중에 자리 잡았으며 박해 기간동안 천주교 신자들의 은신처였습니다.

 

9. 구룡 공소 제대 십자가

좋은 거울 여기있다 예수고상 우리거울 작자 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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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신나무골 공소 제대 십자가

신나무골의 초대 공소 회장인 김상권 요한과 그의 후손이 보관하던 제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의 끝부분이 백합꽃 봉오리 형태를 띠고 있으며 큰 십자가와 작은 십자가가 8개의 축으로 엇갈려 배치되어 있습니다.

숫자 8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상징합니다.

 

11. 제2 전시실

대구지역의 3대형장 가운데 한 곳인 관덕당의 변화와 이곳에서 목숨을 바친 순교자 들의 삶과 신앙에 주목하였습니다.

관덕당은 1749년에 도시청 으로 세워졌으나 이후 여러 차례 형장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천주교인들은 1816년 , 1839년, 1867년, 1868년에 사학을 믿는다는 이유로 관덕정에서 처형당했습니다.

 

 12. 제3 전시실

성 이윤일 요한은 한국교회의 성지이자 대구대교구의  제2 주보성인입니다.

성인의 삶은 하느님을 찾아가는 여정이었습니다.

 

13. 고향 충청도 홍주를 떠나 상주 길골에 살다가 문경 여우목에 정착하여 외교인 3호를 전교하고 회장으로 활동하다 1866년 11월에 교우들과 함께 체포되었습니다.

이윤일 요한은 문경관아에서 상주 감옥으로, 다시 대구경상감영으로 이송되어 관덕당에서 참수 치명하였습니다.마침내 그의 육신은 땅으로 영혼은 천주께로 돌아갔습니다.

 

14. 순교자 19분의 스테인드 글라스(stained glass)가 부착되어 있니다.

 

15. 성인의 방, 영광의 방

성 이윤일 요한은 한국교회의 성인이자 대구대교구의 제2 주보 성인입니다.

 

16. 이윤일 성인의 목관

성인의 유해를 용인 먹방이에서 미리내 무명 순교자 묘역으로 이장할 때마련한 관입니다.

 

17. 단청문양 

관덕정순교기념관에는 여러 가지 단청문양이 있습니다.

단청은 화려한 색으로 건물이  돋보이도록 채색하는 것인데 조선 시대에는 궁궐, 서원, 국가기관, 사찰 등에 사용되었습니다.

 

18. 전례때 사용하는 초는 빛으로 오신 예수님, 세상에 어둠을 옶애는 빛이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비들기는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자 하느님의 영이 비들기처럼 당신 위로 내려 오시는 것을 보셨다 라고 말합니다.

비들기는 성령 하느님을 상징합니다.

 

19. 예수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라고 말씀하신다.

이처럼 포도는 그리스도인을, 포도나무는 그리스도인이 머물러 있어야 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구약성경에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있음을 구름으로 나타냈고, 신약성경에서는 거룩하게 변모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구름이 등장합니다.

 

20. 알파 오메가는 그리스어의 첫글자인 A와 마지막 글자인 Ω는 처음과 끝,시작과 마침을 뜻하며, 요한 목시록에서는 하느님을 지칭합니다.

눈동자는 하늘에서 우리를 굽어보고 계시는 하느님 아버지, 곧 성부를 상징합니다.

 

21. 천정의 반자부분 벽화는 박해와 순교를 상징합니다.

누각이 않은 방향의 좌측 반지부가 박해를 상징하는 그림이고 우측 반자부는 순교를 상징하는 그림입니다.

 

22. 순례지향을 적어 봉헌하는 봉헌대 입니다.

 

23. 유해 현시실 좌측에 요한보스코, 푸멘스 만수예토, 김대건 안드레아, 루페르토 삐르질리오 유해가 현시되어 있습니다.

 

24. 유해 현시실 좌측에는 이윤일 요한,  모방베르로,  유스티노, 비오 10세 교황유해가 현시되어 있습니다.

 

25. 지하에 있는 관덕정 순교기념관 성당 내부모습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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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지도에 관덕정순교기념관 표시해주세요.

 

*유튜브 동영상 링크 바로가기 : 화면 좌측 하단 다음에서보기 눌러주세요!

♥보신후 광고클릭, 구독, 좋아요, 알람 설정해주세요!   감사합니다.

https://youtu.be/V08clavBf2A

 

 

*관덕정순교기념관(Gwandeokjeong Martyrs)

위치 : 대구광역시 중구 관덕정길 11 (우)41967,  지번 : 남산동 938 -19 

전화 : 053 - 254 - 0151

개관일 : 화요일~일요일

관람시간 : 오전 9:30~ 오후 4:30

휴무일 : 매주 월요일(설연휴, 추석연휴, 부활절 및 성탄절 당일)

관덕당은 관덕정의 옛 명칭으로 경상도의 수많은 신앙 선조들이 신알ㅇ을 증거하기위해 참수 치명당한 거룩한 장소입니다.

1991년 1월 20일 순교의 터에서 개관한 관덕정순교기념관은 1815년 을해박해 때 7명, 1827년 정해 박해 때 3명 1866년 병인박해 때 이윤일 요한 성인을 비롯한 7명 순교자를 기억하는 공간입니다. 

특히 대구대교구의 제2 주보성인인 성 이윤일 요한의 유해가 기념관 내 지하 성당 제대와 유해 현시실에 모셔져 있습니다.

천주는 오직 한 분이시며 무궁히 아름답고 좋으시다는 진리를 믿는 관덕당 순교자들의 신앙과 삶의 흔적을 통해 순교하기까지 하느님 뜻 안에서 살고자 노력 했던 순교자들의 믿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제1 전시실

1801년 신유박해 이후 충청도와 전라도에 숨어 살던 신자들이 경상도 산골로 숨어 들었고, 경상도 지역 교우촌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이때 생긴 대표적인 교우촌은 진보의 머루산, 청송의 노래산 영양의 곧은정, 봉화 우런전 등입니다.

달래 신부의 말처럼 박해의폭풍은 경상도 곳곳에 복음의 씨를 날렸습니다.

※ 제2 전시실

대구지역의 3대형장 가운데 한 곳인 관덕당의 변화와 이곳에서 목숨을 바친 순교자 들의 삶과 신앙에 주목하였습니다.

관덕당은 1749년에 도시청 으로 세워졌으나 이후 여러 차례 형장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천주교인들은 1816년 , 1839년, 1867년, 1868년에 사학을 믿는다는 이유로 관덕정에서 처형당했습니다.

※ 제3 전시실

성 이윤일 요한은 한국교회의 성지이자 대구대교구의  제2 주보성인입니다.

성인의 삶은 하느님을 찾아가는 여정이었습니다.

고향 충청도 홍주를 떠나 상주 길골에 살다가 문경 여우목에 정착하여 외교인 3호를 전교하고 회장으로 활동하다 1866년 11월에 교우들과 함께 체포되었습니다.

이윤일 요한은 문경관아에서 상주 감옥으로, 다시 대구경상감영으로 이송되어 관덕당에서 참수 치명하였습니다.마침내 그의 육신은 땅으로 영혼은 천주께로 돌아갔습니다.

 

관덕정은 조선 영조 때 경상관찰사가 군사훈련을 감독하고 무과 시험을 보낸 곳으로 대구읍성 남문 밖 서남쪽에 있었습니다.

현재의 순교기념관은 중죄인들을 처형하던 곳으로서 1815년부터 1868년 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체포된 천주교 신자들이 경상감영에서 옥고를 치른 후 순교하였던 장소입니다.  

한국천주교회 200주년을 맞아 대구 대교구의 신자들이 정성을모아  본 기념관의 대지를 마련한  후 1985년 9월 20일 기공하여 1991년 1월 20일 완공과 동시어 경당을 축성할 때,1867년 1월 21일 이곳에서 순교하신 이윤일 요한 성인(대구 대교구 제2주보)의 유해를 여기에 모셨습니다.

또한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에의해 시복된, 관덕정 참수순교자들과 경상감영의 옥사자들의 영정도 함께모셨습니다.

본관 단청문양 누각에는 카돌릭의 여러 상징들이 어우러져 있으며, 화강석의 벽은 순교자들의 굳건한 신앙과 정신을 기리고, 외벽의 부조는 하느님을 향한 순교자들의 뜨거운 사랑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본관안 경당에는 이윤일 요한 성인을 비롯하여 여러 성인들의 유해를 모셨으며, 더불어 순교자들과 관련된 다양한 사료들을 전시한 본 기념관을 통하여 오늘을 사는 우리와 미래의 후손들이 순교자들의 삶을 계승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하였습니다.

 

 

*천주교 순교성지 관덕정순교기념관

순교기념관이 세워진 이곳은 아미산 이라고 불리던 언덕바지 땅으로 조선시대 사상범을 처형하던 형장이었습니다.

천주교를 박해하던 시절 (을해박해, 정해박해, 기해박해, 병인박해)에 경상도 전역에서 체포된 신자들이 대구감영으로 이송되어 와서 이곳 관덕당 형장에서 순교하신 분들과 대구감영에서 옥사하신 분들을 기리는 뜻으로 이 자리에 1991년 5월 31일 관덕정순교기념관을 개관하였습니다.

2007년 기념관 옆에 신관도 개관하였습니다.

건물 위의 단청 문양 누각은 카돌릭 상징을 담고 있고, 화강석 건물 벽은 순교자들의 굳건한 신앙과 얼을 기리고 있으며, 외벽 부조는 하느님께 대한 순교자들의 사랑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건물 안에는 성당과 이윤일 요한 성인의 유해를 비롯한 성인들의 유해가 모여져 있으며, 순교자들과 관련된 많은 사료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 척화비

조선 고종 8년 척화비는 흥선 대원군이 서양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을 경계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 세운 비석을 말합니다.

흥선 대원군이 집권하던 당시 조선은 서구 열강들의 통상 요구에 직면해 서양 세력과 일절 교역하지 않는 통상수교 거부정책을 추진했습니다.

병인양요가 끝난 후 조선 정부는 척화비를 만들기 시작하여 신미양요  후에 전국 각지의 교통의 요지에 세웠습니다.

 척화비로 상징되는 강경한 양이 정책으로 인하여 수믾은 천주교 신자들이 서양 세력과 연관되었다는 이유로 처형당하였습니다.

임오군란 이후 척화비는 대부분 사라지게 되었는데 그 가운데 일부가 남아 있습니다.

비문에는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였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친 하자는 것입니다. 

화친을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팔아 먹는 일입니다.

우리 만대 자손이 경고하노라"  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 척화비는 영천시 신녕면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경상도와 천주교 신앙 공동체

경상도와 천주교 신앙 공동체 경상도는 본래 진한의 땅입니다. 뒤에 신라의 소유가 되었고, 일명 영남이라고도 합니다. 경상이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한 때는 고려 예종 원년인 1106년입니다. 경주, 상주, 진주의 첫 글자를 따서 경상진주도라고 불렀습니다. 이후 경상주도, 경상진안도 등으로 부르다가 경상도로 명칭이 굳어진 것은 1314년 이다. 1407년에는 군사행정상 편의를 위해 닉동강 동쪽을 좌도, 서쪽을 우도라 했고, 1896년 에 경상남도와 경상북도로 나뉘었습니다. 경상도 지역에 언제 천주교 신앙 공동체가 형성 되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1800년 이전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1791년 신해박해 보다 박해의 정도가 심했던 1801년 신유박해 이후 충청도와 전라도에 숨어 살던 신자들이 경상도 산골로 숨어들었고, 경상도 지역 교우촌이 크게 늘어났습니다.  이때 생긴 대표적인 교우촌은 진보의 머루산, 청송의 노래산, 영양의 곧은정, 봉화 우련전 등입니다. 달래 신부의 말처럼 박해의 폭풍은 경상도 곳곳에 복음의 씨를 날렸습니다. 

 

 

* 단청문양

관덕정순교기념관에는 여러 가지 단청문양이 있습니다.

단청은 화려한 색으로 건물이  돋보이도록 채색하는 것인데 조선 시대에는 궁궐, 서원, 국가기관, 사찰 등에 사용되었습니다.

전례때 사용하는 초는 빛으로 오신 예수님, 세상에 어둠을 옶애는 빛이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비들기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자 하느님의 영이 비들기처럼 당신 위로 내려 오시는 것을 보셨다 라고 말합니다.

비들기는 성령 하느님을 상징합니다.

포도나무

예수님께서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라고 말씀하신다.

이처럼 포도는 그리스도인을, 포도나무는 그리스도인이 머물러 있어야 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구름

구약성경에는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있음을 구름으로 나타냈고, 신약성경에서는 거룩하게 변모하시는 예수님과 함께 구름이 등장합니다.

구름은 하느님의 현존 그 자체를 상징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가시는 예수님의 모습, 그리고 사순시기마다 우리가 기억하는 예수님의 마지막 때를 상징합니다.

 알파 오메가

그리스어의 첫글자인 A와 마지막 글자인 Ω는 처음과 끝,시작과 마침을 뜻하며, 요한 목시록에서는 하느님을 지칭합니다.

눈동자

하늘에서 우리를 굽어보고 계시는 하느님 아버지, 곧 성부를 상징합니다.

칠점

성경에서 일곱이라는 숫자는 완전한 숫자를 의미하며, 성령칠은과 교회의 일곱 성사를 상징합니다.

그외 물고기, 백합, 키로십자가도 의미가 있습니다. 

천정의 반자부분 벽화 : 박해와 순교

누각이 않은 방향의 좌측 반지부가 박해를 상징하는 그림이고 우측 반자부는 순교를 상징하는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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