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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기자/중구 블로그 기자

대구여행 / 한국인이 꼭 가봐야할 한국관광 100선 대구시 중구 골목투어 제1코스 경상감영달성길 역사를 품은 공간 향촌문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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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촌문화관은 한국인이 꼭 가봐야할 한국관광 100선 대구 중구 골목투어 근대로의여행 제1코스 경상감영달성길에 속합니다. 

위치 : 대구광역시 중구 중앙대로 449 ; (지번)향촌동 9-1

관람시간 : 하절기(4월~10월) 화요일~일요일 09:00 ~ 19:00

동절기(11울~다음해 3월) 화요일~일요일 09:00 ~ 18:00

관람료 : 성인(20`64세) : 1,000원경로(65세이상), 청소년(8~19세), 단체(20인 이상) : 500원영유아(7세이상) : 무료

휴관일 : 매주 월요일, 1월1일

전화 : 053-219-4555 대표전화

 

 

1. 향촌문화관은 침체된 도심을 되살리고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옛 한국상업은행 대구지점을 개보수하여 2014년 10월 30일 개관하였습니다.

 

2. 1950년대 피란시절 문화예술인들의 정신적 고향이었던 향촌동 일원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특별한 문화 공간입니다.

 

3. 이 건물의 지하에는 1946년 문을 연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클래식 음악감상실 ‘녹향’이 자리하고 있어 당대 대구 문화의 수준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4. 향촌동 속으로

향촌동은 1906~1907년 대구읍성이 헐리고, 1911년 성곽과 누각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이 생겨난 동네입니다.

1900~1950년대까지의 향촌동을 중심으로 하는 대구의 근대역사를 시대별로 분류한 연표와, 사진 영상 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5. 대구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시내버스를 도입하여 운행한 도시입니다.

대구부가 운영했던 부영버스는 서문시장  대구경찰서  도청  대구우편국 등  대구 근대 거리를 운행 하였습니다.

 

6. 근대 대구 최고의 상업지 중앙로

1917년 준공된 중앙로가 개통과 확장은 향촌동 일대의 상권변화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중앙로는 대구 정거장 앞에서 3정목(동성로 3가)까지를 남북으로 잇는 약 1.05㎞의 도로입니다.

 

7. 멍통구리양복점

70년대 흑백TV 뉴스시간 전에 멍통구리 양복점 광고로 유명합니다.

 

8. 당시 중앙통으로 불리던 너비 1간(약 22미터)의 이 도로가 개통 확장 되면서 주변일대는 급격하게 주거지와 상업지로 바뀌었습니다. 

 

9. 산압의 기반 북성로

북설로는 대구읍성의 북쪽 성벽을 허문자리에 만든 신작로입니다.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가장 번화한 상업중심지 였으며 대구 최초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미나까이백화점 본점이 있었습니다.

 

10. 광복 후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깡통이나 드럼통을 받아각종 철물을 만드는 업자들이 생겨났습니다.

6.25전쟁 후 본격적인 공구거리로 바뀌었습니다.

 

11. 전국을 있는 교통 중심 대구역

1905년 경부선 개통과 함께 대구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한 대구역은 1913년 목조 2층 르네상스 양식의 새 역사로 준공되었습니다.

일제 식민지 수탈의 거점이자 지역 물류와 수송 중심지로 학도병 이송과 피란민 유입 등 숱한 삶의 질곡 속에서도 부산 신의주 역에 버금가는 위용을 자랑했습니다.

 

12. 미성당

70년대 흑백TV  뉴스시간 전에  9시 정각을 알리는 시계 미성당 광고로 유명합니다.

 

 13. 1960년대까지만 해도 중앙통으로 불리던 이 길은 미국공보원, 한국은행 대구지점 등 각종 금융기관을 비롯하여 만미당과 고려당 등의 빵집, 화가 이준섭과 시인 구상이 드나들던 경복여관과 수복여관  서점, 다방,금은방,양복점들이 즐비한 대구의 관문이자 영남상업의 중심지였습니다.

 

14. 국수틀은 1940~1950년대 밀가루 반죽을 통에넣고 손으로 돌려서 압력을 가해 국수를 뽑는 틀입니다.

 

15. 피란민의 삶터 교동시장

양키시장 도깨비시장으로 불리는 교동시장은 8.15광복을 맞아 귀국한 동포들에 의해 난민촌이 형성되면서 만들어 졌습니다.

 

16. 6.25전쟁 직후 피난민 들이 몰려들면서 미군 PX에서 흘러나오는 구제품과 화장품 등이 활발하게 거래되었으며, 1956년 교동시장으로 정식 허가를 받았고, 1980년대까지 호황을 누렸습니다.

 

17.. 향촌동 사람 이 모이는 동네

 향촌동은  6.25전쟁당시 전국에서 모여든 문화예술인들로 인해 당대를 대표하던 시인, 소설가, 화가, 작가, 연극영화인, 가수 등이 넘쳐났습니다.

 

18. 특히 구상, 조지훈, 이중섭, 이상범, 김동진, 박시춘 등 이들이 대구로 내려오면서 명실상부한 한국문화예술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1950, 60년대를 풍미했던 그들이 드나들던 건물이 아직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고, 전란의 와중에 술 한 잔에 목말라하며 표류하던 골목길도 여전합니다.

 

19. 문화예술인의 아지트

1950년대 다방은 한국 문화 음악사를 증언하는 중요한 공간이었습니다. 

향촌동의 다방,음악감상실, 주점은 문화와 예술의 열정을 쏟던 문화예술인들의 아지트였습니다.

북성로 모나미와 상록수 다방에는 문인들의 출입이잦았고, 갈매기다방은 영화인들의 화합이 잦았습니다.

백조다방은 홀중앙에 놓인 그랜드피아노와 바이올린이 명물이 되었고, 권태호, 김동진, 윤용하 등 음악인들이 애용했습니다. 

 

20. 공기놀이는 다섯 개 또는 그 이상의 조그맣고 동그란 돌을 가지고 던져 손으로 잡으며 노는 어린이 민속놀이 입니다.

둘이나 셋 또는 그 이상의 어린이가 모여 편을 짜서도합니다.

계절과 장소에 관계없이 행해지며, 전국에 퍼져 있는 보편적인 놀이입니다.

 

21. 말타기 민속놀이는 어린 남자아이들의 놀이며  패로 나누어 가위바위보를 해서  편이 말이 되는데,  사람은 마부가 되어 담에 기대어 서고 나머지는 양손으로 앞사람의 허리를 쥐고 허리를 구부리고 있습니다. 

이긴 아이들은 모두 조금 멀리서 달려와서  편의 등허리 위에 타고, 말의  앞에  사람이 마부와 가위바위보를 합니.

이기면 다시 말을 타고 지면 말이 됩니.

 

22. 60-70년대 유행하던 하드, 아이스케키 통입니다

아이스케이크(ice cake)는 우유에 설탕과 달걀, 향료 따위를 섞어 액체로 만든 재료에 나무막대기를 꽂아서 얼린 얼음과자입니다.

 

23. 대중예술의 요람

광복 직후 5개였던 대구의 영화관은 1960년대에이르러 개봉관만 7개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송죽극장과 자유극장이 마주보고있는골목은 작은 충무로였고, 목로주점 카스바는 영화인들이 주로 찾았습니다.

남선악기점 대표 이병주가 설립한 오리엔트레코드사(1947~1955)에서는 한국대중음악사의 주옥같은 곡들이 제작되었습니다. 

 

24. 당시 오리엔트레코드사에서는 박시춘, 이재호, 강사랑,손로원, 남인수, 백년설, 현인, 백설희, 금사향 등 한국가요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 대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25. 나의 인생, 우리의 역사
대구 중구도심 재생문화재단에서는 생애사 열전 100선 사업을 추진해오고 있습니다.
2012년부터 2017년까지 발간된 생애사 100권과 기증유물 사진자료를 통해 격동의 역사 속에 묻혀 있던 이웃 어르신들의 삶과 지난 역사를 되짚어 볼 수있습니다. 

 

※네이버지도에 향촌문화관 표시해주세요.  

*유튜브 동영상 링크 바로가기 : 화면 좌측 하단 다음에서보기 눌러주세요!

https://youtu.be/Buc-hrSPWvE

 

*향촌문화관(Hyngchon Cultural Center Guide)

위치 : 대구광역시 중구 중앙대로 449 ; (지번)향촌동 9-1

관람시간 : 하절기(4월~10월) 화요일~일요일 09:00 ~ 19:00

                 동절기(11월~다음해 3월) 화요일~일요일 09:00 ~ 18:00

관람료 : 성인(20~64세) : 1,000원

              경로(65세이상), 청소년(8~19세), 단체(20인 이상) : 500원

              영유아(7세이상) : 무료

휴관일 : 매주 월요일, 1월1일

전화 : 053-219-4555 대표전화

향촌문화관은 침체된 도심을 되살리고 지역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옛 한국상업은행 대구지점을 개보수하여 2014년 10월 30일 개관하였습니다.

1950년대 피란시절 문화예술인들의 정신적 고향이었던 향촌동 일원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특별한 문화 공간입니다.

더욱이 이 건물의 지하에는 1946년 문을 연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클래식 음악감상실 ‘녹향’이 자리하고 있어 당대 대구 문화의 수준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대구문학관과 대구향촌문화관은 대구광역시 중구 향촌동에 있는 대구시 공립 문화시설입니다.

2014년에 개장하였으며 현재 대구문학관과 대구향촌문화관이 공동으로 한 건물에 있습니다.

1912년 8월 16일 대구지역 최초의 일반은행인 선남상업은행이 있던 곳으로 1941년 조선상업은행 대구지점이 되었고 해방 후에는 한국상업은행(현재의 우리은행) 대구지점 건물로 있고 이후로 빈 건물로 있다가 2014년 대구시에서 공유지로 인수하여 대구문학관과 대구향촌문화관을 개장하였습니다.

대구의 행정 및 상업 중심지에 위치한 대구지점은 개점이후 약령과 섬유업 등 지역경제와 같이 성장하여 왔으며 고객의  사랑속에 이 지역 최고의 은행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대구문학관은 대구 지역의 문호들과 문학을 소개하는 전시관으로 건물 3,4층에 있습니다.

대구향촌문화관은 대구 향촌동 지역의 향토사를 주제로 하는 전시관으로 건물 1,2층에 있습니다.

대구향촌문화관은 유료입장 시설입니다.

 

대구는 영남학맥이 뿌리내린 곳이자 기라성 같은 예술인을 배출해 낸 예술의 도시입니다.

민족시인 이상화, 사실주의 소설의 대가 현진건, 감각시의 지평을 연 이장희 등 한국문학사를 대표하는 걸출한 문인을 배출해 낸 근대문학의 도시이기도 합니다.

대구문학관은 근대 문학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향촌동에 1912년 대구 최초로 건립된 일반은행인 선남상업은행 건물을 리모델링하여 조성한 문화시설입니다.

1920년 대구문학의 태동기부터 대구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연 1960년대까지 대구근대문학의 역사와 문화작품을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근대문학 공간이자 교육의 장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대구문학관은 다양한 문학, 전시, 채험, 교육프로그램으로 누구에게나 열린 문학창작공간이자 친숙한 문화공간으로 다가가고자 합니다. 

대구문학관은 시민의 삶과함께, 살아 움직이는 문학 구현을위해 항살 노력하고 있습니다.

 

1. 향촌동 속으로

향촌동은 1906~1907년 대구읍성이 헐리고, 1911년 성곽과 누각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이 생겨난 동네입니다.

1900~1950년대까지의 향촌동을 중심으로 하는 대구의 근대역사를 시대별로 분류한 연표와, 사진 영상 유물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2. 근대 대구 최고의 상업지 중앙로

1917년 준공된 중앙로가 개통과 확장은 향촌동 일대의 상권변화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중앙로는 대구 정거장 앞에서 3정목(동성로 3가)까지를 남북으로 잇는 약 1.05㎞의 도로입니다.

당시 중앙통으로 불리던 너비 1간(약 22미터)의 이 도로가 개통 확장 되면서 주변일대는 급격하게 주거지와 상업지로 바뀌었습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중앙통으로 불리던 이 길은 미국공보원, 한국은행 대구지점 등 각종 금융기관을 비롯하여 만미당과 고려당 등의 빵집, 화가 이준섭과 시인 구상이 드나들던 경복여관과 수복여관  서점, 다방,금은방,양복점들이 즐비한 대구의 관문이자 영남상업의 중심지였습니다.

     

3. 산압의 기반 북성로

북설로는 대구읍성의 북쪽 성벽을 허문자리에 만든 신작로입니다.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가장 번화한 상업중심지 였으며 대구 최초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미나까이백화점 본점이 있었습니다.

광복 후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깡통이나 드럼통을 받아각종 철물을 만드는 업자들이 생겨났습니다.

6.25전쟁 후 본격적인 공구거리로 바뀌었습니다.

 

4. 전국을 있는 교통 중심 대구역

1905년 경부선 개통과 함께 대구 보통역으로 영업을 개시한 대구역은 1913년 목조 2층 르네상스 양식의 새 역사로 준공되었습니다.

일제 식민지 수탈의 거점이자 지역 물류와 수송 중심지로 학도병 이송과 피란민 유입 등 숱한 삶의 질곡 속에서도 부산 신의주 역에 버금가는 위용을 자랑했습니다.

 

5. 멀티테마영상실

대구 시민과 지역의 학교 등으로부터 기증받은 사진자료를 활용하여 다큐멘터리로 구성한 영상 장롱 속 이야기를 감살할 수 있습니다.

지금 만나기 힘든 근대 대구역사 속의 학교사와 생활사가 나레이션과 함께 영상으로 재구성 되어 각 9분씩 방영되고 있습니다.

 

6. 피란민의 삶터 교동시장

양키시장 도깨비시장으로 불리는 교동시장은 8.15광복을 맞아 귀국한 동포들에 의해 난민촌이 형성되면서 만들어 졌습니다.

6.25전쟁 직후 피난민 들이 몰려들면서 미군 PX에서 흘러나오는 구제품과 화장품 등이 활발하게 거래되었으며, 1956년 교동시장으로 정식 허가를 받았고, 1980년대까지 호황을 누렸습니다.

 

7. 향촌동 사람 이 모이는 동네

 향촌동은  6.25전쟁당시 전국에서 모여든 문화예술인들로 인해 당대를 대표하던 시인, 소설가, 화가, 작가, 연극영화인, 가수 등이 넘쳐났습니다.

특히 구상, 조지훈, 이중섭, 이상범, 김동진, 박시춘 등 이들이 대구로 내려오면서 명실상부한 한국문화예술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1950, 60년대를 풍미했던 그들이 드나들던 건물이 아직도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고, 전란의 와중에 술 한 잔에 목말라하며 표류하던 골목길도 여전합니다.

 

8. 문화예술인의 아지트

1950년대 다방은 한국 문화 음악사를 증언하는 중요한 공간이었습니다. 

향촌동의 다방,음악감상실, 주점은 문화와 예술의 열정을 쏟던 문화예술인들의 아지트였습니다.

북성로 모나미와 상록수 다방에는 문인들의 출입이잦았고, 갈매기다방은 영화인들의 화합이 잦았습니다.

백조다방은 홀중앙에 놓인 그랜드피아노와 바이올린이 명물이 되었고, 권태호, 김동진, 윤용하 등 음악인들이 애용했습니다. 

 

9. 대중예술의 요람

광복 직후 5개였던 대구의 영화관은 1960년대에이르러 개봉관만 7개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송죽극장과 자유극장이 마주보고있는골목은 작은 충무로였고, 목로주점 카스바는 영화인들이 주로 찾았습니다.

남선악기점 대표 이병주가 설립한 오리엔트레코드사(1947~1955)에서는 한국대중음악사의 주옥같은 곡들이 제작되었습니다. 

당시 오리엔트레코드사에서는 박시춘, 이재호, 강사랑,손로원, 남인수, 백년설, 현인, 백설희, 금사향 등 한국가요사에 이름을 남긴 사람 대부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0. 나의 인생, 우리의 역사

대구 중구도심 재생문화재단에서는 생애사 열전 100선 사업을 추진해오고 있습니다.

2012년부터 2017년까지 발간된 생애사 100권과 기증유물 사진자료를 통해 격동의 역사 속에 묻혀 있던 이웃 어르신들의 삶과 지난 역사를 되짚어 볼 수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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