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블로그 기자/중구 블로그 기자

대구여행 // 동래에서 한양가던 과거길 380km 걸어서 14일 걸렸다는 영남대로 과거길 벽화골목.

SMALL

- 동래에서 한양까지 영남대로 과거길 -

한방에코체험관 부터 염매시장 입구 까지 영남대로 과거길 벽화 골목이 있습니다.

 

 

1. 한양가는 과거길은 동래에서 한양까지 380km를 걸어서 꼬박 14일이 걸렸다고 합니다.   오늘은 영남대로 과거길 벽화골목을 소개하겠습니다.

 

2. 경부가도 성밖골목으로 불리고 있는 영남대로는 부산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 과거보러 가는 길을 의미합니다. 

 

3. 영남대로는 대구 중구 근대로의 여행 골목투어 2코스에 속합니다.

 

4. 한양가는 과거길 영남대로는 부산 동래에서 대구 상주 문경세재를 지나 한양으로 이어지는 약 960리 길입니다.   도성에 입성한 선비들은 문과 무과의 과거시험에 응시한답니다.

 

5. 한양가는 과거길 부산에서 한양까지는 14일이 소요 된답니다.   구간별로 알아보면 첫날 부산동래에서 양산 물금나루까지, 이틀째 밀양까지, 사흘째 청도읍성까지, 나흘째 대구약령시까지, 닷새째 칠곡군 가산면까지, 엿새째 구미 도개면까지, 이레째 상주금곡리까지, 여드레째 문경읍내까지, 아흐레째 충주까지, 열흘째 모로원까지, 열하루째 경기도 안성까지, 열이틀째 용인 김량장까지, 열사흘째 서울양재까지, 열나흘째 남대문까지입니다.

 

6. 한양가는 과거길 구간은 십리간에 말이 다르고, 백리간에 풍속이 다르답니다.   부산 동래에서 출발하여 양산 황산역 밀양 유천역 청도 팔조령 대구 금호강 칠곡 장천 괴곡 해평 영향역 여차리 석현 낙동강 성곡 낙원역 신원 문경 초곡 괴산군 고사리 안부역 단월역 달천진 검단점 용안역 충주 모로원 석원 이천 용산동 광암 안성 비림거리 진촌 백암리 촤찬역 양지 어정개 용인 판교점 한양까지 입니다.

                   

 

7. 이번에는 영남대로 대구구간을 상세히 알아보겠습니다.   팔조령에서 가창 파동 봉덕동 대봉동 봉산동 덕산동 계산동 시장북로 달성동 원대동 노원동 팔달교 칠곡까지 입니다.

 

8. 대구의 근대인물 중에 국채보상운동을 발의한 구국운동가 서상돈 선생과 국채보상운동의 깃발을 세운 독립운동가 김광제선생이 있습니다.

 

9. 근대인물중에 한국의 초기 서양화 대표작가 이인성 화백, 빼앗긴들에서 민족혼을 일깨운 저항시인 이상화, 조선 신미술을 대표하는 진보적화가 이쾌대, 우리나라 리얼리즘 문학을 선도한 작가 현진건, 영남지방에 사군자를 제일 먼저 도입한 서병오선생, 한국근대문학의 개척자 백기만 선생이 있습니다.

  

10. 한양가는 과거길은 대구에서 쉬어가야 문경새재를 넘을 수 있답니다.   대구는 영남대로의 요충지였으며 조선시대 경상감영 서문시장 약령시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던 거점이었습니다.   대구 도심부는 봉덕동 대봉동을 거쳐 대구읍성의 남쪽 약전골목에 다다르며 계산동, 서문시장을 거쳐 칠곡으로 건너가게됩니다.   대구읍성 성밖 남쪽에 있던 길은 압박길 성밖골목 등으로 불리다 도시화로 좁아져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답니다.

 

11. 한양가는 과거길중 영남대로는 조선시대 인류와 물류의 대동맥이었답니다.   영남대로는 부산 동래포에서 한양까지 걸어서 열나흘정도 걸리는 천리에 가까운 길이며, 조선시대 9대 간선도로중 하나였고 29개의 주요지선이 이어져 있답니다.   영남대로는 경상대로 경상충청대로로 불리기도했으며, 조선의 인재중 반은 영남에 있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영남지방 선비들의 과거길로 유명했고, 고개마다 주막마다 수많은 설화가 전해지고 있답니다.

 

12. 선비가 한양으로 가고 있는 모습을 그린 벽화로 시작하여 중간중간 많은 벽화그림이 있습니다.   괴나리봇짐을 짊어지고 도포자락 휘날리며 한양에 과거보러 먼길을 떠나는 모습입니다.

 

13. 과거를 보기 위해 길을 떠나는 선비들의 소품들인가 봐요.   갓, 부채, 책(논어 맹자,중용 대학) 나막신 괴나리봇짐 벼루 엽전입니다.   장검, 어사모(어사화) 마패는 과거에 급제하면 지급받겠지요.

 

14. 부잣집 자식이라면 말을 타고 과거보러 갔겠지요.   그러나 대다수는 걸어서 과거보러 갔답니다.   마굿간은 말머리를 쓰다듬으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높이의 포토존으로 만들어졌는데, 금방이라도 말이 튀어나올껐 같은 입체감이 있습니다.

 

15. 한옥집 방안에서 선비가 과거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을 담은 벽화입니다.

 

16 이벽화는 과거보려 떠나는 서방님과 배웅하는 아내의 장면입니다.   아마도 서방님 꼭 과거에 급제하고 오세요 라고 빌었겠지요!

 

17. 영남대로 인근에는 과거에 대구약령시장이 있었습니다.

 

18. 조선시대 장터의 상인들 모습입니다.

19. 선비님이 드디어 한양에 도착했나봅니다.   조선시대 지게꾼과 선비들이 입성하는 모습이 보이는군요.

 

20. 과거시험장에서 과거시험을 보는 중인데요.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으로 열심히 과거를 보고있습니다.   차분하게 공부한대로 실력발휘 하면 과거에 급제 할 수 있었겠지요.

 

21. 어사화를 내리시는 모습인네요.   장원급제 해서 임금님에게 어사모를 받고 있습니다.

 

22. 포토존이 표시되어 있는 곳애서 찍은 사진입니다.   드디어 선비가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어사화를 쓰고 말을타서 금의환양하는 중인가 봅니다.

 

23. 당시 영남대로 지형도를 보면 부산 동래에서 출발해 한양에 도착하기 까지의 선비들의 열 나흘간 여정과 주요 지점 등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습니다.   지형도를 보니 대구에서 칠곡 선산 낙동강 상주 등을 지나는데 문경세제가 가장 높군요.

 

 

 

 

※네이버지도에 대구약전골목 표시해주세요.

 

*유튜브 동영상 링크 바로가기 : 화면 좌측 하단 다음에서보기 눌러주세요!

♥보신후 구독, 좋아요, 알람 설정해주세요!   감사합니다.

https://youtu.be/0b9UJQn1rh0?si=JxagYzByRSBpNFDq

 

 

 

*영남대로(Yeongnam Daero)

한양가는 과거길 부산에서 한양까지는 14일소요.

구간별로 알아보면 첫날 부산동래에서 양산 물금나루까지, 이틀째 물금나루에서 밀양까지, 사흘째 밀양에서 청도읍성까지, 나흘째 청도읍성에서 대구약령시까지, 닷새째 대구에서 칠곡군 가산면까지, 엿새째 칠곡에서 구미 도개면까지, 이레째구미에서 상주금곡리까지, 여드레째 상주 금곡리에서 문경읍내까지, 아흐레째 문경읍에서 충주까지, 열흘째 충주단월역에서 모로원까지, 열하루째 충주모로원에서 경기도 안성까지, 열이틀째 안성시 오방동에서 용인 김량장까지, 열사흘째 용인에서 서울양재까지, 열나흘째 양재에서 남대문까지입니다.

 

한양가는 과거길 구간은 십리간에 말이 다르고, 백리간에 풍속이 다릅니다.

부산 동래에서 출발하여 양산 황산역 밀양 유천역 청도 팔조령 대구 금호강 칠곡 장천 괴곡 해평 영향역 여차리 석현 낙동강 성곡 낙원역 신원 문경 초곡 괴산군 고사리 안부역 단월역 달천진 검단점 용안역 충주 모로원 석원 이천 용산동 광암 안성 비림거리 진촌 백암리 촤찬역 양지 어정개 용인 판교점 한양까지 입니다.

 

이번에는 영남대로 구간을 알아보겠습니다.

팔조령에서 가창 파동 봉덕동 대봉동 봉산동 덕산동 계산동 시장북로 달성동 원대동 노원동 팔달교 칠곡까지 입니다.

 

한양가는 과거길은 대구에서 쉬어가야 문경새재를 넘을 수 있습니다.

대구는 영남대로의 요충지였으며 조선시대 경상감영 서문시장 약령시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던 거점이었습니다.

대구 도심부는 봉덕동대봉동을 거쳐 대구읍성의 남쪽 약전골목에 다다르며 계산동, 서문시장을 거쳐 칠곡으로 건너가게됩니다.

대구읍성 성밖 남쪽에 있던 길은 압박길 성밖골목 등으로 불리다 도시화로 좁아져 현재의 모습을 하고 있답니다.

 

한양가는 과거길중 영남대로는 조선시대 인류와 물류의 대동맥이었답니다.

영남대로는 부산 동래포에서 한양까지 걸어서 열나흘정도 걸리는 천리에 가까운 길이며, 조선시대 9대 간선도로중 하나였고 29개의 주요지선이 이어져 있답니다.

영남대로는 경상대로 경상충청대로로 불리기도했으며, 조선의 인재중 반은 영남에 있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영남지방 선비들의 과거길로 유명했고, 고개마다 주막마다 수많은 설화가 전해지고 있답니다.

 

 

 

*영남대로 과거길

조선시대에 영남지역 선비들이 과거시험을 보려면 동래에서 한양까지 걸어서 꼬박 14일이 걸렸다고 한다. 한양까지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죽령이나 추풍령 혹은 조령이라고도 불리는 문경새재 중 하나를 선택해서 넘어야만 했는데, 선비들은 유독 문경새재를 고집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죽령(竹嶺)은 대나무고개다. 미끄러운 대나무 껍질은 선비들에게 피하고 싶은 금기와도 같았다. 즉 과거시험에서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죽령은 피했다. 그럼 추풍령은? 그렇다. 추풍낙엽처럼 낙방하기 싫었던 것이다. 출세에 대한 열망이 너무 강하다보니, 이런 징크스까지 만들어내었다.

영남대로 과거길은 동래에서 밀양, 청도, 대구, 상주와 문경새재를 거쳐 한양에 이르는 먼 길이었다. 그래서인지 과거길에 오른 선비들 모두가 한양까지 무사히 도착하는 것도 아니었다. 멀고 험한 길에 탈이 나서 한양까지 못가는 경우도 있었고, 산적들이나 맹수들의 위협으로 과거길을 멈추기도 했다.

하지만 더 많은 선비들이 한양까지 가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유혹과 쾌락 때문이었다. 기생들에게 빠져 아예 대구에 머무르는 한량들도 많았다. 과거에 붙을 자신이 없거나, 유혹에 무너진 선비들은 대구 기생집에 한 달이고 두 달이고 머무르며 허송세월을 하다 돈이 다 떨어져서야 고향으로 돌아갔다. 선비들에게는 험한 길의 위협보다 달콤한 유혹이 더 무서운 장애물이었다.

그렇다면 1890~1900년 사이, 대구에 왔던 선교사들에게 옛 과거길은 어떤 의미였을까? 대구 선교를 처음으로 시작한 베어드 선교사가 조선에 도착했을 때, 그는 29살의 창창한 나이였다. 그의 아내 애니 베어드는 불과 27살이었다. 베어드의 뒤를 이어받아 ‘대구 선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아담스 선교사 역시 28살 나이로 조선에 발을 디뎠다. 그들은 오직 복음을 위해 조선에 왔다.

대구 초기선교사들이 영남지역에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을 때, 이들이 걸었던 길도 영남대로 과거길이었다. 부산에서 상주까지의 과거길이 복음을 위한 대로로 바뀐 것이다. 복음을 전하는 데 어찌 위협이 없었으랴. 크고 작은 유혹도 많았으리라. 하지만 선교사들은 출세나 입신양명 같은 것을 다 배설물로 여긴 사람들이었다. 크고 작은 위협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유혹과 쾌락에 한 눈 팔다 넘어지지도 않으면서 영남대로 과거길을 걸었다.

구(舊) 대구제일교회 맞은 편 골목으로 들어가면 영남대로 과거길이 조성되어 있다. 선교사들의 첫 열매이자, 대구 최초의 교회인 대구제일교회 가까이에 출세에 대한 열망을 상징하는 영남대로 과거길이 조성되어 있다. 아이러니 하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우리는 지금 무엇을 위한 길을 걷고 있을까? 내가 높아지기 위함인가, 복음을 높이 드러내기 위함인가?

벽화는 과거를 보기 위해 길을 떠나는 선비들의 소품과 장터풍경, 과거시험장의 모습과 장원급제해 금의환향하는 스토리를 표현했다.
또 당시 영남대로 지형도를 설치해 부산 동래에서 출발해 한양에 도착하기까지의 선비들의 열 나흘간 여정과 주요 지점 등을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다.

 

 

 

*보신후 아래 모양에 공감 버튼과, 구독, 광고 한번만 꾹~ 눌러주세요! -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