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계서원 의성군 춘산면 빙계계곡은 경북 8경 중의 하나로, 현재 의성의 대표적 관광지이다.
이 계곡의 氷穴이 있는 곳이 바로 옛날 빙계서원이 있던 자리이다.
1.빙계서원:
선조 33년(1600) 학동(鶴洞) 이광준(李光俊)이 춘산면 빙계리로 이건 후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을 합향하여 빙계서원으로 개칭하고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을 추향하여 오다가 대원군의 전국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다.
2002년도 유교문화권 관광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착공한 복원공사가 2006.5월 완공됨에 따라 지역유림의 뜻모아 이건의 공적을 기려 학동(鶴洞) 이광준(李光俊)을 추향함으로서 6현을 봉향하고 있다.
2.빙계서원 약력;
1556년에 창건되고 1576년에 사액된 빙계서원은 임진왜란 후 1600년에 빙계계곡으로 이건된다.
모재 김안국선생을 1556년 배향하고, 회재 이언적선생을 1600년 추향한 후 숙종 기사년(1689년)에 서애선생과 학봉선생을 추향할 때 까지만 해도 호계서원(1573년 여강서원 창건, 1620년 서애 학봉 추향,1676년 호계서원으로 사액)처럼 厓鶴 순서로 되어 있다.
3.빙계서원 명석:
의성군 춘산면 빙계계곡은 경북 8경 중의 하나로, 현재 의성의 대표적 관광지이다.
이 계곡의 氷穴이 있는 곳이 바로 옛날 빙계서원이 있던 자리이다.
본래 이 곳에는 빙계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그것이 사라지고 난 옛 터에 빙계서원을 세웠었다.
나중에 이 서원까지 훼철되어 없어 졌으므로 이 자리에 지금은 빙계사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모전5층석탑만이 남아 있다.
현재(2004년 1월) 이 옛터에서 아랫쪽으로 500m정도 떨어진 곳에 새로 이 빙계서원을 짓는 공사가 2006년에 복설 되었다.
4.빙월루
5.빙계서원
6.빙계서원
7.빙계서원
8.빙계서원
9.빙계서원 전경
10.빙계서원 전경
11.빙계서원 전경
12.빙계서원 지입로
13. 2013 빙계얼음골 페스티벌 현수막
14.방문 환영 현수막
15.빙계서원 진입로
16.빙계서원 진입로
17.다목적 광장
18.빙계계곡
19.빙계계곡
20.빙계계곡
21.의성군 관광안내도
*빙계서원 (氷溪書院)
선조 33년(1600) 학동(鶴洞) 이광준(李光俊)이 춘산면 빙계리로 이건 후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을 합향하여 빙계서원으로 개칭하고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 학봉(鶴峰) 김성일(金誠一),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을 추향하여 오다가 대원군의 전국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다.
2002년도 유교문화권 관광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착공한 복원공사가 2006.5월 완공됨에 따라 지역유림의 뜻모아 이건의 공적을 기려 학동(鶴洞) 이광준(李光俊)을 추향함으로서 6현을 봉향하고 있다.
*빙계서원의 약역
경북 의성군 춘산면 빙계리
1556년~1576년 1868년 김안국 이언적 음 3월 마지막 亥日
류성룡 김성일 장현광 2006년 복원
모재 1556년, 회재 1601년, 서애 학봉 여헌 1689년, 학동 이광준(2006년 추배)
2008년 4월 29일 火 (음력 3월 19일//3월 마지막 亥일)
1556년에 창건되고 1576년에 사액된 빙계서원은 임진왜란 후 1600년에 빙계계곡으로 이건된다.
모재 김안국선생을 1556년 배향하고, 회재 이언적선생을 1600년 추향한 후 숙종 기사년(1689년)에 서애선생과 학봉선생을 추향할 때 까지만 해도 호계서원(1573년 여강서원 창건, 1620년 서애 학봉 추향,1676년 호계서원으로 사액)처럼 厓鶴 순서로 되어 있다.
그러던 것이 100여년 후인 1805년 영남4현(서애1542 학봉1538 한강 정구1543,여헌 장현광1554) 문묘 배향 상소 때 새삼 문제가 되어 2차 병호시비가 야기되고 영남유림이 양분되는 비극이 있었다.
서원명 - 氷溪書院(빙계서원)
위치 : 의성군 춘산면 빙계동
건축 : 1556년(명종 11) 의성읍 장천변에 회당 신원록이 창건,
1576년(선조 9) 사액, 장천서원
1600년(선조 33) 경상감사 학동 이광준이 현 위치로 이건, 빙계서원으로 개칭
1868년(고종 5) 훼철,
2004년 1월 옛 터에서 500m 아래 지점에 새로 건축
2006년 복원 고유 학동 이광준(경상감사/1600년 이건/ 산운 영천이씨) 추배
배향인물 : 모재 김안국(金安國/1556년 배향)--관향지, 경상감사
회재 이언적(李彦迪/ 1600년)--경상감사
서애 류성룡(柳成龍/ 1689년)--外鄕, 태생지
학봉 김성일(金誠一/ 1689년)--본관지
여헌 장현광(張顯光/ 1689년)--의성현감(1603년)
배향일: 음력 3월 마지막 亥日
“壬辰亂後 院宇頹圯 萬曆庚子(1600) 邑人監司李光俊 移建于縣南四十里氷山面 氷山寺舊址 改稱氷溪書院”(『列邑院宇事蹟』권4, 慶尙道氷溪書院條) 등의 기록 있음
▶ 해설
의성군 춘산면 빙계계곡은 경북 8경 중의 하나로, 현재 의성의 대표적 관광지이다.
이 계곡의 氷穴이 있는 곳이 바로 옛날 빙계서원이 있던 자리이다.
본래 이 곳에는 빙계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그것이 사라지고 난 옛 터에 빙계서원을 세웠었다.
나중에 이 서원까지 훼철되어 없어 졌으므로 이 자리에 지금은 빙계사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모전5층석탑만이 남아 있다.
현재(2004년 1월) 이 옛터에서 아랫쪽으로 500m정도 떨어진 곳에 새로 이 빙계서원을 짓는 공사가 2006년에 복설 되었다.
▶ 관련 글
지금 임금 즉위 6년 을사년 봄에 빙계서원 유생이 山長 金尙瑜의 뜻으로 와서 내게 그 책임을 맡아달라고 청하였다.
사양할 수 없기에 올 해 3월 16일에 서원에서 함께 모이기로 약속하고 약속한 날에 가 보았다.
그런 다음 날 내 친구 上舍 李士明이 나를 찾아와서 내게 말했다.
“이 서원의 廢興顚末은 자네가 이미 스스로 알 것이니 내가 또 어찌 자네에게 말을 하겠는가. 다만 선배의 열심은 후학들을 흥기시키는 것이 되며 우리 유학은 어떻게 하든 꼭 전해야만 하는데 알지 못하는 자들이 마침내 그 사람과 이름이 백년도 못되어 잊혀지도록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것은 고장 자제들의 죄라네. 자네가 그것을 쓴면 그 죄가 무겁지는 않을 것일세. 생각건대, 이 서원이 長川에 있은 지가 오래라.
내 증조부 相國公께서 여기로 옮겨 세울 것을 가장 앞장서서 발의하셨고
내 尊府君께서 또 따라서 다시금 새롭게 하셔서 지금까지 이에 힘입어
없어지지 않았네. 내 先代께서 敎學을 일으키신 공이 어찌 크지 않은가.
내가 듣건대, 선조에 좋은 것이 있는데 자손이 능히 알지 못하면 이것은 밝지 못한 것이며,
알면서도 후세에 드러내어 전하지 못하면 이것은 어질지 못한 것이라 하더군.
그렇다면 내가 이렇듯 서두르려 하는 것이 또한 마땅한 것이지.
다만 나는 학문함이 오래지 못하고 또 글 또한 下手라 장차 능히 내 뜻을 펴서 밝힐 수 없다네.”
그러나 흠모하고 바라는 마음으로 紀績의 글 씀을 부탁받았으나 감히 대답하지 못하였고,
오히려 또 그 일이 중한지라 下手가 감히 하지도 못한 것이 또 일년이었다.
이제는 사명이 이미 저 세상 사람이 되었다. 아! 죽은 벗의 부탁을 내가 또 어찌 사양할 수 있으랴
삼가 생각건대, 우리 마을은 곧 慕齋 金先生과 晦齋 李先生이 風敎를 남기신 땅이다.
嘉靖 丙辰년(1556년)에 悔堂 申元祿이 마을 남쪽 5리쯤 되는 長川 가에 서원을 세워서
두 선생을 제사하기로 발의하였다.
萬曆 丙子년(1576년)에 ‘長川書院’이라는 편액이 내렸으니 대개 어짊의 모범됨을 본 받으라 함이다.
이제 大明 『一統志』를 상고해 보면 중국 사람들은 程子나 朱子가 한번 말에서 내려 쉬거나 한번
시를 읊조린 곳에는 서원을 세워 높이고 받들지 않음이 없다.
그렇다면 우리 고장에서 두 선생을 위해 祠堂이 없을 수 있겠는가.
선배가 院宇를 세워 향사하려고 한 것과 선조임금께서 사액하여 기리신 것은 그만둘 수 없는 것이
마땅하다. 얼마 되지 않아 전쟁을 만나 院宇가 거의 무너져 없어지게 되자 마침내 長川으로부터
冰溪의 북쪽으로 옮겨 세웠다. 대개 장천 옛터는 縣邑과 가까운 곳에 있어서 車馬가 함께 질주하고
저자거리의 시끄러움 때문에 후학들이 藏修하기에 적당하지 못하였으니,
어찌 다만 兵火 때문에만 그렇게 한 것이랴. 冰溪는 마을 남쪽 40리 밖에 있는데
산이 둘러 있는 빼어난 곳이며 땅이 궁벽져서 그윽하다.
아래로는 돌 사이로 샘물이 흐르는데 샘이 맑고도 얕아 아낄만 하다.
또 風巖冰穴이 있어 한 여름에도 춥다. 辛引孫의 시에서 말한 바 ‘얼음산 명승이 우리 동쪽을 차지하고
[冰山名勝擅吾東]’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옛날에 太一殼이 있었고 또 冰山寺가 있었는데 어느 대에
만들어졌는지는 모른다. 成化 戊戌년에 太一殼은 태안군으로 옮기고 萬曆 壬辰년에 冰山寺 또한
전쟁으로 불탔다. 혹시 하늘이 또한 아끼고 숨겼다가 오늘 서원의 터를 삼으려고 했던 것일까.
이때에 相國 李光俊이 때를 잃지 않으려고 이 늙은이에게 묻고 조정에 주달하였으나 터를 잡지는
않았으니 서원을 옮길 의논을 결정한 것은 실은 萬曆 庚子년(1600년)이다.
이때는 새로 큰 난리를 겪은 터라 백성과 물자가 해지고 없어서 백성들을 번거롭게 하지 않으려는
생각에 일을 맡은 사람이 이에 옛 재료와 남은 기와를 수습하여 편의에 따라 일을 진행하여
다음 해인 辛丑년에 공사를 마쳤다.
祠宇와 講堂 및 東·西齋와 正門樓, 童蒙齋, 公需廳까지 총 30여 칸이다.
그러나 세월이 오래되자 낡아서 또한 비에 상하는 근심을 면하지 못하였다. 이때에 우리 李延橚 공이
相國의 손자 肯堂의 뜻으로, 重建하는 책임을 자신의 소임으로 여겨 朴㙉 씨와 함께 일을 시작하여
완성하였다. 이에 鄕老儒生이 힘을 다하지 않는 이가 없었고 邑宰 또한 자기 녹봉을 덜어서 도왔다.
丁亥년 봄에 廟宇가 완성되고, 戊子년 가을에 書樓가 우뚝 섰으며, 甲午년에 廚舍를 고치고,
壬寅년에 講堂을 세우고 전후가 모두 십수 년이다.
대저 그런 후에야 전에 좁던 것이 크게 되며 누추하던 것이 높게 되며, 제단이 좁던 것이 오르내리고
이리저리 활동해도 남을 지경이 되니 장소가 좁고 누추한 근심이 모두 없어지게 되었다.
아아! 그 성대함이여. 李公은 永陽사람으로 字는 子長이다. 斯文의 중요한 일에 진실로 집안 대대로
淵源을 얻었고, 또 그 가슴 속에 허다한 계획이 있었으니, 이 學舍의 규모를 보니 또한 그 끝이나마
엿볼 수 있겠다. 그러나 이공이 지금 또 늙었고 그 뒤에 있는 자는 끝이 없다.
많은 後人들이 이공이 한 일을 보고 이 서원에 대해 옛것을 더욱 새롭게 하여 영원토록 잇는다면
이 고을 斯文의 소망이 혹 없지는 않을 것이다.
丙午년 4월 乙卯에 古隱 後學은 쓰노라.
이 서원이 있었던 자리에는 한 여름에도 시원한 바람이 나오는 바위동굴인 風巖과 한
여름에도 얼음이 언다는 동굴인 冰穴이 있다. 현재도 남아 있어서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氷溪書院 관련 옛 기록
○『교남지』39권
군 남쪽 3리쯤 되는 곳에 있다. 명종 병진년에 신원록이 창건하여 문경공 김안국을 봉향하였다.
선조병자년에 '장천서원'으로 사액되었다. 경자년 이광준이 빙산사가 있던 옛 터로 옮겨 세우고
이름을 지금과 같이 고치고는 문원공 이언적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숙종 기사년에 문충공 류성룡, 문충공 김성일, 문강공 장현광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列邑院宇事蹟』4권, 慶尙道氷溪書院條
임진왜란 때에 서원과 묘우가 훼파되었다. 만력 경자년에 마을 사람 감사 이광준(산운 영천이씨)이
현의 남쪽 40리 빙산면 빙산사가 있던 옛 터로 옮겨 세우고 빙계서원으로 이름을 고쳤다.
○『俎豆錄』, 義城 부분
명종 병진년에 세워져 선조 1576년 병자년에 ‘장천서원’으로 사액되었다. 경자년에 옮겨 빙계서원이라 했다.
봉향인물: 김안국[의성김씨이다. 廟庭에 보인다.] 이언적[선조 경자년1600년에 봉향했다.]
류성룡[김광수의 외손이다. 숙종 기사년1689년에 봉향했다. 안동지역에 자세히 보인다.]
김성일[의성김씨이다. 숙종 기사년에 봉향했다. 안동지역에 자세히 보인다.]
장현광[선조 계묘년에 이 고을 원이 되었다. 숙종 기사년에 봉향했다. 성주지역에 자세히 보인다.]
*빙계서원 복향식 및 추배 고유행사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빙계리 산73-1번지
1556년(명종 11)에 회당(悔堂) 신원록(申元祿)이 창건하여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을 봉향하였다.
창건시에는 의성읍 장천(현 남대천 상류)에 위치하여선조9년(1576년) 장천서원으로 사액을 받았다.
선조 33년 학동 이광준(李光俊)이 춘산면 빙계리로 이전 후 晦齋 이언적(李彦迪)·西厓 류성룡(柳成龍) 鶴峯 김성일(金誠一)·旅軒 장현광(張顯光)의 위패를 모셨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
2002년 유교문화권 관광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착공한 복원공사가 마무리되어 지역유림의 뜻을 모아 이건의 공적을 기려 학동(鶴洞) 이광준(李光俊)을 추향함으로써 6현을 봉향하고 있다.(2006년 6월 21일)
○사업비:18억 6천만원
○사업규모:건물9동, 주차장, 기타.
○주요건물:사당, 강당, 문루, 삼문, 고직사, 서재, 화장실, 협문
*행사명:2013 의성 빙계 얼음골 페스티벌일정:2013.8.2(금)~8.3(토)
장소:빙계계곡 특설무대
행사내용:전국 빙계얼음골 가요제
초청가수:최유나 주용필외 다수
주최:춘산면주관:빙계리 얼음골 페스티벌추진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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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자퀴즈 172 : 음식물에 않은 파리를 내쫓자,파리가 한 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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