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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여행

보물제327호 의성 빙산사지 5층석탐-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사랑 이야기....잠자는 공주/가수 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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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빙계계곡 풍혈(風穴)과 빙혈(氷穴)에 얽힌"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재미있는 사랑 이야기가

있다.

 

 

1.빙산사지 5층석탑: 제6경-보뭉제327호

경북 8승의 하나로 얼음구멍과 바람구멍이 있어 빙산이라 하고, 그 산을 감돌아 흐르는 내 쌍계천을 빙계라

하고 마을을 빙계리라 부르는 곳에 빙산사라고 하는 절이 있었는데, 조선 태종이 폐사(廢寺)를 지시하여

절이 없어지고 말았단다.

그래서 빙산사 오층석탑이 아니고, 빙산사지 오층석탑이 되고 말았다 한다.

그리고 오층석탑 뒷편 넓은터가 예전에 빙산사 금당이 있던 자리이고, 그곳에서 조금 더가면 빙혈이 있다.

 

2.빙산사지 5층석탐 안내판:

*빙산사지 오층석탑(義城 氷山寺址 五層石塔)

*경북 의성군 춘산면 빙계리 산70

*보물 제327호(1963.01.21)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 사이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석탑이다.

 1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세웠으며, 돌을 벽돌처럼 다듬어 쌓은 모전석탑 형식을 하고 있다.

 1층 몸돌(옥신석)의 네 모서리에는 별석으로 모서리기둥(우주)을 세웠고, 정면에는 불상을 모시는

작은 방인 감실을 두었다.

 각기 크기가 다른 돌로 각 층의 지붕돌(옥개석)을 만들었으며 지붕돌 받침은 4단이다.

 상륜부에는 받침장식 부재인 노반만 남아 있다.

 전탑과 목탑의 양식을 함께 지닌 석탑으로, 의성 탑리오층석탑을 모방한 작품으로 추정된다.  -출처 문화재청-

 

3.빙산사지 5층석탐 안내판

 

4.빙산사지 5층석탑

 

5.빙산사지 5층석탑

 

6.빙산사지 5층석탑

 

7.빙산사지 5층석탑

 

8.빙산사지 5층석탑

 

9.감실불좌대:

빙혈 입구에 석탑감실안에 금동불상이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왜군이 가지고 갔다.

남아 있는 것은 불상 아래에 깔았던 자리뿐이다.

감실불좌대(龕室佛座臺)는 현재 빙혈 출입구 길목의 왼쪽 산비탈에 고이 모셔져 있다.

감실불좌대 아래에 적혀 있는 짧은 안내문을 읽어보면 아래와 같다.

"오층석탑 감실 안에 있던 부처님 좌대이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이 위에 있던 금동불을 훔쳐가고 버려둔 것을 이곳에 보존하였다."

 

10.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사랑 이야기:

신라 무열왕의 둘째따님인 요석공주가 젖먹이 아들 설총을 데리고 지아비 원효대사를 찾아  이곳 빙산원

氷山院:빙계계곡의 옛이름) 에 이르렀을 때는 유월염천 유두(流頭)가 막 지난 무더운 여름이었다.

공주일행이 서라벌을 떠나 보현산을 거쳐 조문국(지금의 의성군 금성면)경내에 다다르자, 궁궐터와 임금이

쓰시던 우물인 어정(御井)이 있었다. 

동네어귀에서  원효대사의 거처를 물으니 빙산사 빙혈(氷山寺 氷穴)속에 기도하는 이상한 스님이 

있다고 일러 주었다.

"빙혈을 지나면  찬바람이 씽씽 불어 나오는 풍혈(風穴)이 있는데 얼마나 깊은지는 아는 사람이 없고. 그 끝이

저승까지 닿았다고도 하지요."

공주는 좁은 굴속을 더듬더듬 기어 들어갔다.

이리꼬불 저리꼬불 몇 굽이를 지나  얼마나 들어갔는지 모른다.

점점 추워졌다. 

공주는 전신이 꽁꽁 어는 듯 하였다. 

발이 미끄러지는 곳은얼음판 뿐이었다.

얼마나 들어 갔을까?

굴이 넓어졌다.    

허리를 펴고 팔을 둘러도 거칠 것이 없다.   

공주는 크게 소리쳐 불러 보았다.

"여바아(여보) 굴속이 웅하고 울렸다.

울리는소리가 마치 큰 쇠북 마지막 소리 모양으로 길게 꼬리를 끌다가 쓰러졌다.-중략-

...춘원 이광수작 원효대사 (하) 중에서...

 

11.빙산사지 입구

 

12.빙신사지 입구

 

13.빙산사지 터

 

14.빙산사지 터

 

15.인암:제3경

 

16.풍혈

 

17.풍혈

 

18.풍혈

 

19.풍혈

 

20.풍혈

   

 

21.빙산사지 터

 

 22. 빙산사지 터

 

23.빙산사지 터

 

24.은행나무

 

25.의각 입구

 

26.의각:제4경

 

27.빙계계곡

 

28.빙계계곡

 

 

*빙산사터와 오층석탑

빙혈이 위치한 곳 옆으로 빙산사터와 5층석탑이 있다.

신라 후대에 빙산사라는 사찰이 있었다고 하지만, 석탑 이외에는 여기저기 널린 주춧돌과 기와조각들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다.

최근에는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건물터 등은 대략 정비된 상태이다.

석탑은 높이 약 8m이며, 전탑 양식의 5층 석탑으로, 근방에 있는 유명한 탑리 오층석탑과 거의 비슷한

높이와 모양을 하고 있는데, 축조 솜씨나 수준 면에서는 다소 떨어진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주변 환경과 잘 조화를 이루며 균형을 맞추고 있어 빙혈, 풍혈 구경길에 잠시 들러 쉬어갈 만하다.

 
현재 빙계는 의성군 지정 군립공원이며, 계곡 입구에서부터 용추,물레방아, 풍혈, 어진바위(仁巖), 의각,

석탑, 빙혈, 불항(佛項) 등의 빙계 8경을 이루고 있다.

어디에나 사람들이 몰리는 성수기 피서철만 피한다면 유명도에 비해 탐방객들이 많지 않아 비교적 한
가롭게 계곡과 온천을 같이 즐기기에 좋다. 
한편으론 거대한 바위에 공룡의 발자국들이 여기저기 찍혀 있는 인근의 
제오리 공룡발자국 화석지도 함께 들르면 한결 다양한 여행길이 될 것이다. 
 
*빙산사지
경북 8승의 하나로 얼음구멍과 바람구멍이 있어 빙산이라 하고, 그 산을 감돌아 흐르는 내 쌍계천을 빙계라
하고 마을을 빙계리라 부르는 곳에 빙산사라고 하는 절이 있었는데, 조선 태종이 폐사(廢寺)를 지시하여 
절이 없어지고 말았단다.

그래서 빙산사 오층석탑이 아니고, 빙산사지 오층석탑이 되고 말았다 한다.

그리고 오층석탑 뒷편 넓은터가 예전에 빙산사 금당이 있던 자리이고, 그곳에서 조금 더가면 빙혈이 있다.

 

*빙산사지 오층석탑(義城 氷山寺址 五層石塔)

*경북 의성군 춘산면 빙계리 산70

*보물 제327호(1963.01.21)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전기 사이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석탑이다.

 1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세웠으며, 돌을 벽돌처럼 다듬어 쌓은 모전석탑 형식을 하고 있다.

 1층 몸돌(옥신석)의 네 모서리에는 별석으로 모서리기둥(우주)을 세웠고, 정면에는 불상을 모시는

작은 방인 감실을 두었다.

 각기 크기가 다른 돌로 각 층의 지붕돌(옥개석)을 만들었으며 지붕돌 받침은 4단이다.

 상륜부에는 받침장식 부재인 노반만 남아 있다.

 전탑과 목탑의 양식을 함께 지닌 석탑으로, 의성 탑리오층석탑을 모방한 작품으로 추정된다.  -출처 문화재청-

 

이 탑도 한때는 국보였다.

1958년 8월 31일 정부가 국보를 지정할 때 이 탑도 581호 국보로 뽑혔다.

그러다가 1963년 1월 21일 다시 보물 327호로 재지정을 받았다.

 

뒤로 돌아 가면 넓은 터가 나오고, 국립수목원에서 전자기기를 설치하여 두어서 이곳의 변화를 측정하고 있다.

더 가면 빙혈이 나오는데 입구에 석탑감실안에 금동불상이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왜군이 가지고 갔다.

남아 있는 것은 불상 아래에 깔았던 자리뿐이다.

감실불좌대(龕室佛座臺)는 현재 빙혈 출입구 길목의 왼쪽 산비탈에 고이 모셔져 있다.

감실불좌대 아래에 적혀 있는 짧은 안내문을 읽어보면 아래와 같다.

 

"오층석탑 감실 안에 있던 부처님 좌대이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이 위에 있던 금동불을 훔쳐가고 버려둔 것을 이곳에 보존하였다."

 

조선시대 미수 허목선생은 "산에 쌓인 돌이 울퉁불퉁하고 구멍이 많아서 마치 낙숫물 그릇과도 같고

사립문과도 같고, 입추(立秋)에 얼음이 녹기 시작하여 입동(立冬)에 찬 기운이 다하고 동지(冬至)의

막바지에 이르면 구멍이 모두 비게 된다"는 빙산기(氷山記)를 미수기언에 남겼는데 이것도 걸어 두었다.

미수 허목선생도 달성'삼가헌'과 삼척에도 있다.

 

 여기는 어른 몇 명이 겨우 들어 올 자리밖에는 없다.

좁은 통로를 통해서 안으로 들어 오면 유리로 된 창이 앞을 막고 있고, 그 속에 못 들어가게 열쇠로 잠겨져 있었다.

 

 

여기에 현대 사람들이 손을 너무 많이 대었다.

입동이 지나면 얼음이 다 녹는다고 하는데, 손을 댄 곳에는 얼음이 그대로 있다.

뭐가 잘 못 되었나요?

빙산사지 오층석탑은 언덕위에 자리하고, 그 아래를 굽어 보는데 그 아래가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제527호

빙계계곡이다.

그 뒷편에는 빙혈이 있고, 앞의 도로가에는 풍혈이 자리잡고 있다.

 

 앞에 흐르는 쌍계천을 따라 오르면 북두산밑에 오토캠핑장이 자리하고 있어 야영하기가 좋다.

아름다운 계곡과 역사가 함께하는 좋은 여행지이다.

 

 

"빙계계곡 풍혈(風穴)과 빙혈(氷穴)에 얽힌"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사랑 이야기

신라 무열왕의 둘째따님인 요석공주가 젖먹이 아들 설총을 데리고 지아비 원효대사를 찾아  이곳 빙산원

氷山院:빙계계곡의 옛이름) 에 이르렀을 때는 유월염천 유두(流頭)가 막 지난 무더운 여름이었다.

공주일행이 서라벌을 떠나 보현산을 거쳐 조문국(지금의 의성군 금성면)경내에 다다르자, 궁궐터와 임금이

쓰시던 우물인 어정(御井)이 있었다. 

동네어귀에서  원효대사의 거처를 물으니 빙산사 빙혈(氷山寺 氷穴)속에 기도하는 이상한 스님이 

있다고 일러 주었다.

"빙혈을 지나면  찬바람이 씽씽 불어 나오는 풍혈(風穴)이 있는데 얼마나 깊은지는 아는 사람이 없고. 그 끝이

저승까지 닿았다고도 하지요."

공주는 좁은 굴속을 더듬더듬 기어 들어갔다.

이리꼬불 저리꼬불 몇 굽이를 지나  얼마나 들어갔는지 모른다.

점점 추워졌다. 

공주는 전신이 꽁꽁 어는 듯 하였다. 

발이 미끄러지는 곳은얼음판 뿐이었다.

얼마나 들어 갔을까?

굴이 넓어졌다.    

허리를 펴고 팔을 둘러도 거칠 것이 없다.   

공주는 크게 소리쳐 불러 보았다.

"여바아(여보) 굴속이 웅하고 울렸다.

울리는소리가 마치 큰 쇠북 마지막 소리 모양으로 길게 꼬리를 끌다가 쓰러졌다.-중략-

...춘원 이광수작 원효대사 (하) 중에서...

 

춘원선생의 소설 속 이야기처럼 먼 옛날 이 계곡은 거대한 동굴이었다고 한다.

대지진으로 동굴이 무너지면서 풍혈,빙혈 구멍이 지금 같이 좁아 졌으나 지하는 어떤 형상을 하고 있을런지

전해지기만 하다.

 

 

*행사명:2013 의성 빙계 얼음골 페스티벌 

일정:2013.8.2(금)~8.3(토)

장소:빙계계곡 특설무대

행사내용:전국 빙계얼음골 가요제

초청가수:최유나 주용필외 다수

주최:춘산면

주관:빙계리 얼음골 페스티벌추진위원회

 

 

 잠자는 공주/신유 

 

 

 

 

 

웃자퀴즈 172 : 음식물에 않은 파리를 내쫓자,파리가 한 말은?정답:내가 먹으면 얼마나 먹는다고

 *힌트:인터넷에 검색하면 정답이 있습니다. ㅎㅎㅎㅎ 매주 월요일 정답 공개 합니다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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