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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여행 /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 암울한 시대를 살면서 일제에 저항한 민족시인 이상화 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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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에 암울한 시대를 살면서 일제에 저항한 민족시인 이상화 고택을 소개합니다.

이상화 고택은 한국인이 꼭 가봐야 할 한국관광 100선 대구 중구 골목투어 근대로의 여행 2코스 경상감영달성길에 속합니다.

위치 :  대구 중구 서성로 6-1 (우)41933 ; 지번계산동2가 84

개관시간 : 동절기 ; 10:00~17:30.  하절기 ; 10:00~18:00

휴관일 : 설, 추석당일 

관람료 : 무료

전화 : 053-256-3762

 

 

 

1. 이상화는 일제강점기 비탄에 빠진 우리 정서를 시적 언어로 끌어올림으로써 한국 현대사의 이정표를 세운 민족 시인입니다.

 

2. 본 고택은 이상화가 말년(1939~1943)을 보냈고 그의 마지막 작품 '서러운 해조'가 탄생한 역사적인 장소로 이상화의 숨결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3. 이상화 생가터는 서성네거리에서 서문시장 방향으로 덕영치과 병원건물 뒤편 주차장 정문 맞은편에 작은 안내 팻말 있는 골목으로 70m 들어가 한옥카페 라일락뜨락 입니다.

 

4. 대구시 중구청은 2022년 4월부터 매주 금·토·일요일 18시∼22시에 계산예가, 이상화 서상돈 고택 일원에서 「근대골목 밤마실」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

5. 근대골목 밤마실 시낭송 장소입니다.

 

6. 상화를 만날 수 있는곳을 소개합니다.

이상화 고택, 상화로, 상화 생가, 국채보상 상화어록비, 화원 상화 가족묘역, 수성못 상화 시비, 대륜중고 교가비, 달성공원 상화 시비, 두류공원 상화동상, 화원 상화기념관 이장가문화관 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현재 상화고택은 시인의 혼과 숨결을 담고 있는 상징적 공간이자 영원한 한국인 이상화의 드높은 민족정신을 이어받은 체험 교육장이 되고 있습니다.

 

7.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 유한킴벌리 지정 문화유산, 한국관광 100선 선정 인증서 등이 게시되어 있습니다.

이상화의 정신을 선양하는 사업을 펼치는 구심점이 되고 있으며 그를 흠모하는 발길이 끊이지 않아 대구 시민뿐만 아니라 전 국민, 나아가 세계인이 찾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8. 인력거 무료체험장소입니다.

2022년4월 ~ 12월. 매주 토요일 14시 ~ 16시까지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인력거는 1890년대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 전해졌는데 주로 관리, 부자, 기생 등이 이용하는 교통수단 이었답니다.

 

9. 이상화 고택에서 부치는 느린우체통에 엽서를 넣으면 1년 후 기재하신 주소로 보내드립니다.

 

10. 이상화 고택 스탬프 보관장소입니다.

 

11. 이상화고택 탁본 채험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장소입니다.

 

12. 대구에서 태어난 이상화는 한국 근대사에서 큰 업적을 남긴 위대한 인물입니다. 

이상화가 살다가 간 일제 강점기는 암흑의 시대였습니다.

 

13. 이상화는 조국의 아픈 현실을 통감하며 저항정신을 시에 담아 표현한 시인이자 나라와 겨레의 고통을 해방시키고자 고뇌하고 행동한 독립 애국지사입니다. 

 

14. 방 내부에 들어갈 수는 없지만 근대식 한옥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15. 방 내부의 칸칸은 협소하였지만 방문을 활짝 열어놓아 개방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16. 벽에 걸린 흑백사진, 책상과 장식장 같은 물건을 통해 더욱 근대시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17. 대청마루 앞엔 요즘은 골동품이된 남, 여, 애기용 백고무신이 진열되어 있습니다.

 

18. 대청마루에 당시에 사용하던 소품들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19. 옆방에도 당시에 쓰던 가재도구가 남아있습니다.

 

20. 부엌에도 당시에 사용하던 주방용품들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21. 이상화 선생의 약력이 비석에 새겨져 있습니다.

 

22. 빼앗 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시가 새겨진 비석입니다.

 

23. 역천 시가 새겨진  비석입니다.

 

24. 이상화 시인의 유명한 시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고등학교 때 다 접했을 '역천'과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시비가 위치해 있습니다.

 

25. 마당에는 당시에 사용하던 우물 수동펌푸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26. 장독대에는 항아리 뚜껑까지 보존되어 더 정겨운 느낌이 들게 했습니다.

 

27. 담쪽에는 감나무 1그루가 있고, 마당 한 가운데 양편에는 석류나무 각각 1그루씩 심어져 있는데 조롱조롱 달린 석류가 익어가고 있습니다. 

 

※네이버지도에 이상화 고택 표시해주세요.

 

 

*유튜브 동영상 링크 바로가기 : 화면 좌측 하단 다음에서보기 눌러주세요!

 

 

 

*이상화 고택(Leesangwa House)

위치 :  대구 중구 서성로 6-1 (우)41933 ; 지번계산동2가 84

개관시간 :동절기 ; 10:00~17:30.  하절기 ; 10:00~18:00

휴관일 : 설, 추석당일 

관람료 : 무료

전화 : 053- 256-3762

대구광역시 중구 계산동 2가 84번지에 위치한 고택은 항일문학가로 잘 알려진 이상화(李相和, 1901 ~1943) 시인이 1939년부터 작고하던 1943년까지 기거하던 곳입니다.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에 민족의 광복을 위해 저항정신의 횃불을 밝힌 시인 이상화선생의 시향이 남아있는 곳입니다.

이상화고택은 1999년부터 고택을 보존하자는 시민운동으로 시작하여 군인공제회에서 인근 주상복합아파트를 건립하면서 고택을 매입해 지난 2005년 10월 27일 대구시에 기부채납했습니다.

대구시는 대지면적 205m², 건축면적 64.5m²(단층 목조주택 2동)의 고택을 보수하고, 고택보시민운동본부에서 모금한 재원으로 고택 내 전시물 설치를 완료했습니다.

이상화 고택은 암울한 시대를 살면서 일제에 저항한 민족시인 이상화의 정신을 기리고 후손에게 선생의 드높은 우국정신과 문학적 업적을 계승하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됩니다.

 

이상화는 일제강점기 비탄에 빠진 우리 정서를 시적 언어로 끌어올림으로써 한국 현대사의 이정표를 세운 민족 시인입니다.

본 고택은 이상화가 말년(1939~1943)을 보냈고 그의 마지막 작품 '서러운 해조'가 탄생한 역사적인 장소로 이상화의 숨결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대구에서 태어난 이상화는 한국 근대사에서 큰 업적을 남긴 위대한 인물입니다. 이상화가 살다가 간 일제 강점기는 암흑의 시대였습니다. 조국의 아픈 현실을 통감하며 저항정신을 시에 담아 표현한 시인이자 나라와 겨레의 고통을 해방시키고자 고뇌하고 행동한 독립 애국지사입니다. 이상화는 험난한 근대사 속에서 준엄한 자기비판과 불같은 저항정신으로 나라를 상실한 망국민들이 해야 할 책무가 무엇이며 지조와 애국이 무엇인가를 행동으로 보여줌으로써 이 땅에도 저항문학이 존재했음을 실증한 인물입니다. 그가 살다간 시대는 일제 치하로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담한 현실이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 굴종을 숙명으로 하며 변절한 수많은 사람들을 보면서 슬픔을 삼켜야만 했습니다.

이상화 시인은 이러한 서슬 퍼런 일제 치하에서도 시대적 상황을 직시하고 조국 해방을 염원하며 울분과 통곡의 심정으로 '시인에게' '통곡' '역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해를 먹다' '나의 침실로' 등 혼이 담긴 보석 같은 빛나는 저항시를 남겼습니다.

영원한 한국인 이상화

폭풍처럼 살다간 43년의 생애 동안 그가 남긴 업적은 지금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로 하여금 다시 민족혼과 시대정신을 일깨우게 합니다.

이상화의 정신을 기리고 널리 알리고자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둔 대구시 중구 계산동 2가 84번지 상화고택을 2002년 대구 시민의 힘으로 지켜내 광복 63년을 맞아 2008년 8월 12일 개관하게 되었습니다. 시민의 숙원사업으로 이루어진 상화고택은 역사적인 장소일 뿐만 아니라 마지막 시 '서러운 해조'를 집필한 곳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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